탄핵정국의 불똥이 자본시장으로 옮겨붙고 있다.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회사채 투자를 사실상 중단하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기업은 금리를 높여서라도 채권을 발행하고 있지만 투자자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주식시장이 얼어붙자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던 기업들은 잇달아 상장 일정을 내년으로 늦추고 있다.
하지만 3일 밤 10시23분께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4일부터 9일까지 회사채는 2412억원어치 순상환됐다.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보다 신규 발행액이 적었다는 의미다.
계절적으로 연말은 북클로징(회계장부 마감)에 따라 기관투자가의 신규 투자가 줄어드는 시기다. 대부분 투자자가 12월 중순께 북클로징에 들어가지만 올해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결산 시기가 앞당겨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연말엔 보험사 등 2금융권을 중심으로 채권 발행 물량이 소화돼야 하지만, 대부분 기관이 회사채 신규 투자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라며 “연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장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ABL생명(후순위채)과 효성화학은 각각 1000억원, 3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예측을 했지만 단 한 건의 주문도 들어오지 않아 전액 미매각됐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고금리 비우량 회사채 수요가 많았는데 이달 들어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며 “채권시장에서도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면서 국고채와 우량 회사채를 중심으로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고 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 비우량 회사채를 중심으로 금리가 상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증권사 채권발행시장(DCM) 임원은 “최근 외국인 자금이 채권시장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는 만큼 국채와 회사채 금리가 뛰고, 그만큼 발행 기업의 조달 여건은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휘청이는 일부 기업과 산업의 자금 조달 통로는 더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일부 기관에서는 ‘석유·화학, 건설 업종의 채권 투자를 중단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IPO 분위기 호전을 기대하고 수요예측을 뒤로 미룬 기업들은 발을 구르고 있다. 10~11월 케이뱅크와 동방메디컬, 미트박스글로벌, 씨케이솔루션, 오름테라퓨틱 등 5개 기업이 상장 일정을 미뤘는데 비상계엄 사태로 일정을 잡기가 더 어려워졌다.
서형교/김익환/최석철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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