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 검사 출신 대통령을 기이한 심리 상태로 몰아간 건 믿음으로 변해버린 어떤 가설이다. 북한을 추종하는 반국가 세력이 여론 조작과 부정 선거를 통해 국회를 장악했고, 이들이 줄 탄핵과 입법 폭주로 국정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앤 더불어민주당이 대신 그 일을 맡은 경찰의 특수활동비마저 삭감하고, 검사는 물론 감사원장까지 탄핵하자 가설은 확신으로 변했다. 그 과정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확증편향을 강화했다는 게 현재로선 가장 합리적 추론이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극소수의 측근들과 이런 믿음을 공유하며 상호 증폭시켰다. 밤에는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극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며 부정 선거론자의 세계관에 더욱 빠져들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내치는 불통 스타일은 그를 더욱 고립시켰다. 미디어 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에코체임버(echo chamber)’ 혹은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부르며 일찌감치 그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에코체임버는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끼리 모여 자신들만의 신념을 강화하는 현상이다. 필터버블은 개인화된 검색과 추천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다른 견해에 노출되지 못한 채 지적으로 고립된 상태를 뜻한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집어삼킨 알고리즘은 탄핵과 조기 대선 정국에서 양극화를 더욱더 부추기며 진화할 것이다. 혐오심을 먹고 사는 좌우 양극단의 정치 유튜버들에게 큰 장이 선 셈이다. 눈앞의 권력 투쟁에 급급한 정치인들은 이들 유튜버와의 공생을 택했다. 퇴행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팩트에 기반한 비판적 뉴스 소비를 훈련하는 ‘뉴스 리터러시’ 담론은 내전 상태인 이들에게 한가한 소리일 뿐이다. 6시간 만에 희극처럼 막을 내린 비상계엄령만큼이나 위험한 민주주의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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