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SK팜테코는 최근 전 세계적인 수요로 품귀 현상을 빚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신제품의 원료의약품을 5년 이상 장기 공급하기로 글로벌 제약사와 계약했다. 계약 규모는 최소 1조원에서 최대 2조원으로 알려졌다. SK팜테코는 계약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계약 상대방이 미국 일라이릴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덴마크 노보노디스크는 자체 생산 체제지만 릴리는 부족 물량을 CDMO 업체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은 이를 위해 3100억원을 투입해 세종시에 첨단 저분자·펩타이드 생산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2026년 가동이 목표로 수주 실적은 2027년부터 연간 2000억원에서 4000억원이 SK팜테코 매출에 반영될 전망이다.
SK팜테코가 비만 치료제 CDMO 시장을 뚫으면서 추가 수주도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31년 125조원 규모로 커져 의약품 CDMO 분야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고품질 비만 치료제 생산에는 상당한 제조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해 신규 진입 자체가 어렵다”며 “비만약 개발 경쟁이 치열한 만큼 CDMO 업체도 10년 이상 수혜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故최종현부터 代 이은 '30년 투자'…신약개발·디지털헬스케어 결실
SK팜테코는 ‘꿈의 항암제’로 불리는 첨단 의약품 CGT 분야에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엔 미국 기준 인증(cGMP) 생산 6개월 만에 스위스 페링제약으로부터 방광암 유전자치료제 ‘애드스틸라드린’의 CDMO 계약을 따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 밖에 질병의 근원인 유전물질을 표적으로 하는 올리고핵산 치료제와 유도탄처럼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 생산도 검토 중이다. 올리고핵산 치료제는 내년 시범생산을 시작해 2026년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최종현 회장은 임원보고 자리에서 “바이오는 당장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되고 실패해도 되니 계속 보고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2030년까지 바이오산업을 그룹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며 ‘뚝심 바통’을 넘겨받았다. SK그룹은 신약뿐만 아니라 CDMO, 디지털헬스케어 등으로 점차 제약·바이오 포트폴리오를 넓혀갔다.
SK그룹은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공격적인 해외 CDMO기업 M&A로 주목받았다. 2017년 글로벌 제약사 BMS의 아일랜드 공장 인수, 2018년 미국 합성의약품 CDMO업체 앰팩 인수에 이어 2021년 단일 규모로 유럽 최대 CGT CDMO업체인 프랑스 이포스케시와 2023년 세계 최대 CGT CDMO업체인 미국 CBM을 잇달아 인수했다. 최 회장의 맏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은 기존에 맡고 있던 SK㈜ 산하 혁신신약TF에 더해 올해 성장지원TF 담당도 겸직하며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안대규/남정민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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