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번 넘게 공연했는데도…호두까기 인형 아직 설렌답니다

입력 2024-12-12 17:19   수정 2024-12-13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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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까기 인형을 매년 보는 분들께 제가 질문하고 싶어요, 매년 만나는 작품이니까 오히려 더 기대되고 설레지 않은가요?”

지방 투어를 거쳐 오는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클라라(호두까기 인형 주인공)로 무대에 서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41). 2002년 입단해 군무 일원부터 수석무용수까지 근성과 집념으로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온 발레리나다. 2009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자선 공연부터 매해 호두까기 인형의 여주인공인 클라라를 맡고 있다. 출산과 코로나 시기만 빼면, 빠짐없이 호두까기 인형 무대에 섰다. “올해는 클라라로 어떻게 다른 점을 보여줄지 연구하고 있다”는 그를 최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연말이면 저는 2009년 호두까기 인형 첫 무대가 떠올라요. 클라라로 무대에 섰던 날이 생각나면서 벅찬 감정이 올라옵니다. 매년 하니까 물린다, 싫다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네요.”

클라라는 강미선에게 어린 시절부터 꿈과 같은 존재였다. 초등학교 시절엔 ‘어린 클라라’를 연기하는 초등학교 6학년 언니들이 부러웠다. 선화예술중 시절엔 유난히 발레를 잘한 학우들이 어린 클라라를 맡아서 또 부러웠다. “어린 클라라를 끝내 할 수는 없었지만 호두까기 인형의 무대에서 여러 번 조연으로 춤추며 이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어요.” 강미선은 입단 후 7년 만에 어른 클라라를 비로소 연기하게 됐다.

그는 눈을 감고 두 팔을 올렸다. 막이 전환해 클라라가 성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신의 마임이었다. “클라라가 극중 꿈속에서 성장한 모습으로 왕자와 환상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는데요, 제가 등장하는 그 첫 장면에 아직도 설렌답니다.(웃음)” 그러면 강미선은 호두까기 무대에 몇 번이나 섰을까. 그는 “어린 시절 조연부터 군무진으로 하루에 두어 번씩 공연하던 것까지 하면…, 1000번은 넘을 것 같다”고 했다.

올해 강미선은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립 40주년을 맞아 준비한 수많은 공연에 섰다. ‘코리안이모션 정(情)’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 바야데르’ 등 눈코 뜰 새 없는 한 해였다. 연습실에서 호두까기 인형 음악이 들리자 그는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다고. “호두까기 인형은 내가 또 한 해를 잘 살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남편(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도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클라라와 왕자로서 완벽한 합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집에서도 얘기하곤 해요.”

상투적인 말이지만,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말은 강미선을 위한 것일지 모른다. 그는 유니버설발레단의 23년 차다. 얼마 전엔 발레단에서 근속상도 받았다. 물론 시련과 고민도 많았다.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도, 부상으로 몸이 아플 때도, 좌절할 때마다 묵묵히 발레 바를 잡고 마음을 달랬다. 단단한 기본기와 연륜, 연기력이 묻어나면서 그는 오히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빛을 봤다. 강미선은 마흔 살이던 지난해 무용계 최대 영예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했다. 보통 무용수 인생의 최전성기에 이 상을 타는 게 일반적이지만, 강미선은 출산을 거친 후여서 신체적 능력이 최상이 아닐 때 이 상을 받았다. 한국적 정서를 다룬 창작 발레 ‘미리내길’로 발레 종주국 러시아에서 받은 상이었기에 의미도 남달랐다. 발레가 화려한 테크닉과 어린 나이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님을, 수많은 무용수에게 깨닫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강미선은 어떤 무용수로 남고 싶을까.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탄 이후 발레 대중화에 대해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됐어요. 이렇게 순수한 기쁨을 주는 예술을 더 많은 사람이 알고 나눴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앞으로도 호두까기 인형을 비롯해 더 많은 무대를 통해 대중화에 기여한 무용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지방 투어를 거쳐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다.
공연은 30일까지 열린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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