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연히 TV를 켰다가 보게 된 한 야전 지휘관의 울먹이는 듯한 발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의 자랑스러웠던 아버지, 부하들에게 존경받던 강직한 군인이 하루아침에 내란죄의 주요 임무 또는 조력자로 전락한 게 딱했다.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을 끄집어내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현장의 군인들에게 “면피성 해명만 한다”고 비판하는 게 옳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런 일이 위계질서가 뚜렷한 군인과 검찰 조직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밥그릇’이 달린 직장에서 다소 부당하고 무리한 지시를 받았을 때 “이건, 안 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직원이 있을까. 우리 회사는 반대 의견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조직인가.
획일적인 조직도 권위주의가 자라나는 토대다. 관료와 검찰 중심의 대통령실 ‘서·오·남(서울·50대·남성)’은 평생 질서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공무원과 민간 인재, 해외 동포, 패기 있는 젊은 인재 등 실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국정 운영에 참여시키겠다”던 대선 공약은 실종됐다. 부처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실의 체질도 바뀌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빠져나온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부처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독점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처 공무원들은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과 부처 간 위계는 적자와 서자처럼 더 뚜렷해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빅테크’ 문화는 딴판이었다. 애플, 아마존, 구글, 테슬라 등 업종이 전혀 다른 기업 임직원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스타트업을 함께 창업했다. 테슬라 출신 애플 고위 임원, 구글 출신 아마존 직원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주 80시간, 무보수로 정부 혁신에 나설 혁명가를 뽑겠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공언은 한국에서 너무나 이국적인 얘기다.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권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로 후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연말을 맞아 자기 주변의 후배와 부하들이 어떤 의견을 내고 있는지, 또 내부 소통은 활발한지 찬찬히 살펴봤으면 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