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원·달러 환율에 수입업체는 물론 수출 제조업체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업체 실적이 불어난다”는 건 옛말이라는 게 수출기업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자 비용과 원자재 도입 비용이 늘면서 실적과 채산성이 적잖게 훼손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보다 자금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 사정은 한층 심각하다.
1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0전 내린 1431원90전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다소 주춤했지만 환율 고공행진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노무라증권 등은 정치적 불확실성 탓에 내년 환율이 1500원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수출기업들의 표정은 어둡다. 과거에는 환율이 상승해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이 불어나면서 기업의 실적이 뛰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1276원40전으로 전년 대비 15.76%(173원81전) 치솟자 그해 경상수지(330억8760만달러 흑자)가 199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요즘 사정은 다르다. 2021년 한국은행이 발간한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요인 분석’ 보고서와 2022년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원화 환율의 수출 영향 감소와 시사점’ 보고서는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복잡하게 얽힌 공급망 구조 때문이다. 해외에서 조달하는 원재료를 들여와 재가공해 수출하는 방식이 한국 수출기업 사이에서 자리 잡으면서 환율의 영향력이 반감됐다. 환율이 오르면 되레 비싼 돈을 주고 원자재 등을 사와야 하는 만큼 실적이 나빠질 우려가 커졌다.
통상 유류비, 항공기 리스료 등을 달러로 내는 항공사, 원유와 나프타를 수입하는 정유·화학업체의 외화 빚이 많은 편이다. 환율에 따라 이들 기업의 실적 출렁임도 크다. 지난 3분기 보고서를 살펴보면 LG화학은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순이익이 5919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밖에 아시아나항공(-3645억원), SK이노베이션(-2818억원), LG에너지솔루션(-2389억), 고려아연(-1335억원) 등도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할 때 순이익이 1335억~3645억원 줄어들 것으로 봤다. 순외화부채가 33억달러에 달하는 대한항공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330억원 규모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만기가 1년 미만인 단기 외화 빚의 차환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 9월 말 기업의 단기 외화 빚은 209억600만달러(약 29조900억원)에 달했다.
치솟은 환율은 기업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원·달러 환율 변동이 실물경제 및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실질 환율이 1% 상승하면 설비투자는 0.9%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자재와 기계류 구매비용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김익환/최석철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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