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고장 난 대통령제? 대한민국의 위기

입력 2024-12-16 10:01   수정 2024-12-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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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대통령의 계엄선포가 국회 의결로 해제되면서 최악의 국가적 대혼란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 검찰·경찰의 대통령 내란혐의 수사를 둘러싸고 후폭풍이 일파만파입니다. 극도로 불안한 정국이 지속되면서 증권·외환시장은 물론 수출, 관광 등 내수와 안보 분야에서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호(號)의 총체적 위기입니다.

지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요? 일각에선 대통령제라는 정부 형태의 한계 또는 위기가 전면에 드러난 것이란 분석을 내놓습니다. 거대 야당이 출현하면 의회와 행정부(대통령) 간 갈등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격화합니다. 대통령제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한 사람의 성향과 판단에만 의존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극한으로 대립하는 의회와 행정부(대통령)가 언제든 국가를 나락으로 빠뜨릴 위험이 있는 거죠.

대통령제는 완결된 정부 형태도 아니고, 언제든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정부 형태와 관련한 논의가 향후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런 문제와 함께 국가비상사태 때 발동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이 어떤 것이 있고, 헌법에서는 관련 조항이 어떻게 변화돼왔으며, 선진국의 국가긴급권 법제는 어떠한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헌법으로 국가비상사태 대응 수단 규정
초법적인 권한 행사 엄격하게 통제하죠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헌법은 국가비상사태의 종류를 열거하고, 각각의 경우 국가수반이 국가긴급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쟁·내란·경제공황, 대규모 자연재해 등이 발생할 경우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국가수반에게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권한을 부여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76조는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가 벌어졌을 때 ‘긴급재정경제명령’을,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가 발생하면 ‘긴급명령’을 대통령이 내릴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명령’은 법률의 효력을 갖습니다. 다음으로 제77조에선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죠.

“국가긴급권, 헌법 파괴할 수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국민 기본권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습니다. 국가비상사태에 발동할 수 있는 초법적 비상 권한은 이러한 헌법 정신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대통령은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헌법 제77조 제3항). 그래서 국가긴급권의 발동 목적과 조건·내용·절차 등을 헌법에 직접 규정해 이른바 ‘입법적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의회에 국가긴급권 해제 요구·승인 등 권한을 줘 ‘정치적 통제’를 하고, 위헌 여부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사법적 통제’도 가하죠. 국가긴급권은 독재적 권력을 합법화하는 만큼 관련된 헌법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하는 게 옳습니다. 그렇지 않고 관련 규정을 넓게 해석하거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이 국가긴급권을 마련해둔 취지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눈길

국가긴급권의 기원은 로마공화정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공화국이 중대한 위기에 처해 평상시 행정체제로는 안전을 지키기 어렵다고 원로원이 확신할 때, 집정관 등이 한 사람의 독재 권력자를 지명하고 절대권을 부여했습니다. 각국의 헌법에서 국가긴급권이 제도화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제헌헌법 때부터 계엄선포권과 긴급명령·긴급재정처분권을 도입했습니다. 1972년에 제정된 제4공화국 헌법(일명 유신헌법)은 국가긴급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에게 방대한 긴급조치권을 부여했습니다. 결국 긴급조치 9호까지 발령되며 국민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현행 1987년 개정 헌법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과 긴급명령권은 과거의 긴급조치나 비상조치권에 비해 대통령 권한을 많이 줄였습니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의 대표적인 예는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며 내린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입니다. 한편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번까지 계엄령은 총 18회 내려졌습니다. 이 가운데 비상계엄은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 당시(8회)를 제외하면 박정희 정권(3·4공화국) 때 6회로 가장 많이 발령됐습니다.

역사 속 반성 통해 제도 개선

국가긴급권은 제1·2차 세계대전 등 전시 상황, 외침의 역사를 많이 겪은 유럽에서 주로 발전했습니다. 영국은 제1·2차 대전을 전후해 국토방위법, 비상대권법(Emergency Power Act), 국민동원법 등 광범위한 부분에 걸쳐 긴급권에 관한 수권법(입법부가 행정부에 입법권을 위임한 법률)을 늘렸습니다. 만약 정부가 국가긴급권을 과잉 행사하고 관련한 면책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긴급조치는 소급해 효력을 상실합니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신성동맹에 의한 간섭, 보불전쟁 등의 과정에서 헌법이 15회 전면 재편된 역사를 겪었습니다. 이런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긴급권 제도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발전했어요. 19세기 공화국 체제 때부터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경우를 법률로 정할 수 있게 했죠. 독일 헌법은 비상사태의 유형을 세분해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의회민주주의와 권력분립주의를 지킬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반 바이마르헌법의 국가긴급권 발동 요건과 내용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해 많은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NIE 포인트
1. 대통령에 관한 헌법의 규정을 살펴보자.

2. 국가긴급권이 발동되면 국민 기본권이 어떻게 제한될 수 있는지 공부해보자.

3.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에서 국가긴급권이 발동된 사례를 찾아보자.
'제왕적 대통령제' 서구에서도 논란 많아
정부 형태 개선·발전시킬 계기로 삼아야
지금의 사태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도를 넘어선 국가긴급권 발동이 오히려 비상사태를 부른 측면이 큽니다. 본질적으로는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대통령제, 현실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더욱 비대해지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제하에서 거대 야당이 출현해 의회와 대통령이 사사건건 충돌한다면 문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야당 장악 의회와 행정부가 권력을 나눠 가졌다는 의미에서 ‘분점 정부’라고 부릅니다. 분점 정부의 대통령은 의회가 ‘입법 독재’를 한다며 대립각을 세울 수 있고,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집니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제의 한계와 위기에 관해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입법부 견제 목적의 대통령제

그러면 대통령제는 어떻게 역사에 등장하게 됐는지 볼까요? 입헌군주제의 역사적 전통에서 나타난 의원내각제는 군주의 권력을 대폭 줄인 정부 형태입니다. 대통령제는 18세기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의 역사적 산물인데요, 공교롭게도 ‘또 다른 군주’가 될지 모를 위험성을 가진 대통령이란 지위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미국 건국 당시 제헌회의는 입법부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문제로 여겼습니다. ‘입법 독재 상황은 곧 파국(ruin the country)의 길이므로, 입법부에 대한 통제야말로 행정부의 가장 큰 목적(one great object)’이라고 인식했죠. 제헌회의는 행정부가 ‘군주제의 태아(foetus of monarchy)’가 되는 것을 막는 한편, 입법 폭주로부터 공화주의 정부를 보호할 수 있도록 강력한 권한을 보장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상식대로라면 대통령을 의회에서 뽑는 일종의 간접선거를 실시했을 텐데, 그러지 않고 국민 직접선거로 뽑습니다. 이 또한 행정부가 의회에 종속되지 않게 노력한 결과입니다. 마찬가지로 행정부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해임의결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대통령이 반역·수뢰·부패의 죄를 지을 경우 탄핵을 통해 배제하는 제도를 만들었죠. 대통령제는 입법부의 막대한 권력을 행정부로도 나눠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가 발전하도록 고안된 제도였습니다.

미국서도 부작용 평가 많아

그런데 20세기 들어 복지국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행정의 적극적 개입이 중요해졌습니다. 또 세계대전 등 국제적 갈등이 늘어나 대통령의 권한이 증대되기에 이릅니다. 이미 1970년대부터 서구에선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기 시작했죠. 미국 대통령제는 흔히 미국 정치의 대표적 ‘수출품’으로 꼽지만, 의외로 큰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남미 여러 나라가 대통령제를 도입했다가 독재화하는 부작용을 겪은 이후 더욱 그랬습니다. 세계에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나라가 오늘날까지 여전히 절반에 달하고, 대통령제를 도입하더라도 미국형이 아닌, 의원내각제와 혼합한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슈테판 포이크트와 베른트 하이오의 연구에 따르면 1950~2003년 세계 123개 국가 중 정부 형태를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바꾼 나라는 68개국에 달했고, 반대의 경우 55개국에 이르렀습니다.

미국 의회 내 기구인 헌법제도위원회(Committee on the Constitutional System)는 미국 헌법이 채택한 엄격한 권력분립이 독재와 권력남용을 막는 데 많은 기여를 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의회와 대통령 간 대립을 조장해 국가의 중요 의사결정을 방해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어요. 그 해결책으로 연방의회 의원이 행정부 장관 등의 직책을 겸할 수 있도록 헌법 개정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의회와 대통령 모두 국민의 대표인 이중적 정통성(dual legitimacy)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부작용을 빚고 있습니다. 야당이 장악한 의회와 대통령이 갈등이 격화하면서 국정이 마비되는 비토크라시(vetocracy)가 만성화됐습니다. 정부 형태가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면 개선을 위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현행 대통령제의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유권자가 전체의 51%에 달했습니다.
NIE 포인트
1.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장단점을 살펴보자.

2. 우리나라 정부 형태에서 의원내각제 요소는 어떤 게 있는지 알아보자.

3. 우리나라의 개헌 관련 논의가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확인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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