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뮤지컬 같은 공연은 정세를 은유적으로 비판하기도, 직접적으로 관객들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시국에 교훈을 던지는 공연을 보러 관객들이 극장을 찾고 있다
권력에 눈먼 자의 비극적인 결말… 뮤지컬 '맥베스'
1년 만에 무대에 오른 뮤지컬 '맥베스'는 초연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충심 가득한 장군 맥베스가 권력에 눈이 멀어 왕을 살해하고 왕좌를 차지하지만, 점점 미쳐가다 모든 걸 잃고 죽는 이야기를 그린 셰익스피어 비극을 재해석한 서울뮤지컬단의 창작 뮤지컬이다.
2023년 초연 후 1년 만에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개막 전부터 큰 관심이 쏠렸다. 출판사 민음사와 협업으로 진행한 북 토크쇼는 60석 전석이 사전 예약으로 매진됐다. 회당 티켓 판매량은 11일 기준 지난해 공연 (140.7매)보다 76% 늘어난 247.8매에 이를 정도로 예상을 뛰어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권력과 욕망이 핵심 주제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현재 시국과 맞닿아있는 부분이 공연에 높아진 관심의 이유로 꼽힌다. 개막을 앞두고 한 관객은 "권력 앞에 무너져가는 인간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 닮아있다"며 관람 기대 평을 남기기도 했다. 공연은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독립운동에 뛰어는 50살 CEO, 뮤지컬 '스윙데이즈_암호명 A'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든 걸 내던지고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도 재조명받고 있다. 초연 창작극 뮤지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는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설립자이자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유일한 박사의 삶을 모티브로 한다. 주인공 '유일형'이 카드 게임과 도박을 즐기는 성공한 사업가에서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독립운동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린다.
국가의 생존이 위태로운 시대 속에서 한 개인이 겪는 갈등과 성장 과정을 조명하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 "이 시국에 관람하면 더더욱 좋은 뮤지컬", "비극적인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등의 후기가 나오고 있다. 공연 관계자는 "공연 내용 중 시국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보니, 관객들이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더 인상 깊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밀리에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연극 '타인의 삶'
연극 '타인의 삶'은 도나스마르크 감독의 영화를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사회주의 독재 정권이 집권한 동독으로 배경으로 비밀경찰 '게르트 비즐러'가 자유로운 영혼 지닌 두 연인을 도청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작가인 남자와 배우인 여자 사이의 대화를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당에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반국가적인 기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도 이들을 보호해주기 시작하며 위기에 처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에 "요즘 시국에 맞는 공연" "대사 한 줄 한 줄이 마음에 막히는 시국" "시의성 있는 극" 등의 평이 이어지고 있다. 공연 관계자는 "매 공연 관람객 후기를 확인하고 있다"며 "지난주 계엄 사태 이후에 열린 공연에서는 정세와 연결되는 대사들을 관객들이 더 인상 깊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2025년 1월19일까지 열린다.
동학농민운동을 그린 연극 '민초 : 횃불을 들어브러'
대학로에도 시국에 어울리는 작품들이 연말 무대에 연달아 오른다. '민초 : 횃불을 들어브러'는 동학농민운동을 재해석한 연극이다. 조선 말기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폭정에 농민들이 항거하면서 벌어지는 역사를 담았다.
영화감독 백승환이 이번 작품으로 첫 연극 연출에 도전한다. 백 감독은 단편영화 <대리 드라이버>(2017)로 연출가로 데뷔해, '첫잔처럼', '큰엄마의 미친봉고', '더블패티', '온리갓 노우즈 에브리띵' 등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백 감독은 이 공연에 대해 "거짓과 폭력의 시대, 부당함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공연은 오는 1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나온씨어터에서 열린다.
카뮈와 한국 근현대사가 만난 '오월의 햇살'
프랑스 실존주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정의의 사람들'이 한국 근현대사와 만난다. 원작의 배경은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 제국이다. 러시아 제국의 대공이었던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를 암살한 1905년 폭탄 테러 사건을 모티브로, 다섯명의 혁명당원이 혁명의 정당성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이야기다.
연극 '오월의 햇살'은 배경을 1980년대 대한민국으로 옮겨온다. 1900년대 러시아에 한국 민주화운동을 투영시킨다. 독재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모인 주인공들이 서로의 신념이 부딪히며 정의, 인간의 존엄성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과정을 담는다. 공연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에서 오는 18일부터 29일까지 공연한다.
구교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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