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빼고 다 망한 거 아닌가요?"
최근 방송가에서 마주친 한 연출자의 말이다.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공개되는 상황에서 홍보에 열을 올려야 하지만, 갑작스러운 '12·3 계엄' 사태 이후 모든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는 국회와 대통령실에 쏠려 있다. 한 관계자는 "요즘 기업 송년회 행사에 초청됐던 가수들의 공연까지 다 취소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 웃고, 노래하는 게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그런 거 같다"고 귀띔했다.
계엄 선보는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이후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이 콘텐츠를 즐기기보다는 뉴스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최근 새 프로그램 론칭을 준비 중인 한 관계자도 "홍보가 너무 안 된다"며 "현실이 더 극적인데 OTT나 방송을 찾아보겠냐?"라고 토로했다.
다만 현실 반영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영화 '서울의 봄'은 역주행하며 국민적인 관심을 입증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당시 9사단장이 이끌던 대한민국 육군 내 불법 사조직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군사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해 개봉해 올해 초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한 '서울의 봄'은 비상 계엄 사태 이후 IPTV로 본 시청자가 1000% 이상 급증할 만큼 주목받았다.
일간 박스오피스 순위 역시 3일 23위에서 4일에는 3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4일 하루 동안 SK Btv, LG U플러스 tv, 지니 TV 등 IPTV에서 총 1150건의 시청 수를 기록했고, 5일 1000건, 6일 1393건, 7일 1892건으로 시청 수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또한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도 6일부터 10일까지 닷새 연속 '톱10' 영화 차트 정상을 지켰다. 웨이브에서도 계엄 사태 전후 양일(12월 1~2일, 12월 4~5일)을 비교했을 때, 시청 시간이 874.3% 급증했다. 특히 웨이브에서는 '서울의 봄'이 개별 구매 유료 영화라는 점에서 판매량 폭증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서울의 봄' 뿐 아니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담은 영화 '택시운전사', KBS 2TV '5월의 청춘'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웨이브에서 서비스 중인 '택시운전사'와 '5월의 청춘'도 계엄 전후 양일 각각 1108.7%, 347% 시청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계엄으로 관심을 받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영화 '소방관'은 티켓값의 일부를 소방병원 기부하는 챌린지로 입소문을 타면서 1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계엄 사태 직격탄을 맞았다.
'소방관'은 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 당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투입된 소방관들의 상황을 그린 이야기를 담은 작품. 주연배우 곽도원의 음주운전으로 4년 동안 개봉되지 못했던 비운의 작품으로 꼽힌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지만, 연출자인 곽경택 감독의 동생이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며,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105명의 국회의원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매 움직임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곽경택 감독은 "지난 12월 3일의 밤을 생각하면 솔직히 저도 아직 심장이 두근거린다"며 "우리 가족 구성원 중 막내인 곽규택 국민의 힘 의원이 당론에 따라 탄핵 투표에 불참한 것으로 인해, 영화 '소방관'까지 비난의 대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저 또한 단체로 투표조차 참여하지 않았던 국회의원들에게 크게 실망하고 분노한 건 마찬가지"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저는 대한민국에 대혼란을 초래하고 전 세계에 창피를 준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탄핵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계엄 상황에서 사진을 올렸다고 비판받는 메시지에 임영웅이 "뭐요"라고 답했다가 논란이 되고, 브랜드 화보를 올렸다고 악플을 받은 차은우 등 계약을 맺은 홍보글을 올렸다가 역풍을 맞는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MBC 금토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이 뉴스 특보로 편성이 불발된 소식이 알려진 후 이에 대해 언급한 주연배우 유연석에게도 비난이 쇄도했다.
한 연출자는 "가뜩이나 제작 환경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나라 안팎의 상황이 불안하면 누가 드라마나 예능을 보고, 웃고, 떠들겠냐"면서 "빨리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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