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좋은 리뷰 쓰는 데 가장 큰 방해물은 '남이 쓴 리뷰'

입력 2024-12-13 17:54   수정 2024-12-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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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읽기’와 ‘쓰기’를 ‘인풋’과 ‘아웃풋’에 비유해 설명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양질의 정보를 투입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만의 이야기로 무언가를 쓸 수 있다며 “100권의 독서 인풋이 있어야 1권의 아웃풋이 나온다”는 ‘100 대 1 비율’을 제시했다. 훌륭한 아웃풋을 위해서는 충분한 인풋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등이 현대인의 주요 소통 공간이자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자리 잡으면서 사람들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감하는 댓글을 달지만 그곳에 올라온 글 가운데 상당수는 별로 진심이 묻어나지 않는다. ‘자동응답 메일’처럼 느껴질 만큼 천편일률적이다.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책 제목에는 ‘언어화’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좋아요’를 언어화하는 기술> <순식간에 언어화하는 사람이 잘된다> <언어화 대전> <리더의 언어화> <이렇게 머릿속을 언어화한다> <언어화의 마력> 등 제목에 ‘언어화’를 쓰는 게 유행인 듯하다. 여러 책 가운데 <‘좋아요’를 언어화하는 기술(「好き」を言語化する技術)>의 인기가 가장 뜨겁다.

서평가이자 작가로 교토시립예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미야케 가호가 쓴 책으로, 아이돌과 다카라즈카(여성 극단)에 흠뻑 빠진 저자가 나름대로 터득해 온 ‘추천 글’ 잘 쓰는 법을 소개한다.

‘좋다’ ‘재밌다’ ‘대단하다’ ‘미쳤다’ 같은 단순한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관점으로 좋아하는 작품 또는 ‘최애’(가장 사랑하는 무언가)에 대한 감정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에 관해 알려준다.

“관찰력, 분석력, 어휘력, 문장력, 표현력 등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언어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주범이 다름 아닌 ‘남들의 리뷰’라고 지적한다. 요즘 시대에 특히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일이 어려워진 것은 소셜미디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자연스럽게 타인의 언어가 생각 속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소셜미디어 페이지에 접속해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사람의 언어, 낯선 사람의 표현이 계속해서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온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나서 타인이 남긴 리뷰를 검색해 영화에 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다. 그러는 동안 자신의 감상은 사라지고 타인의 감상에 젖어버린다. 타인의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자신이 원래 느끼고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린다. 일종의 ‘세뇌’다.

진짜로 좋아하면 그것에 관해 자꾸만 이야기하거나 소문내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책, 영화, 드라마, 음악이 있다면 그 이유를 매력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진다. 저자는 ‘취향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드는 기술’이며 이것을 위해 우선 타인의 언어와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감정’이나 ‘감동’을 ‘감상’으로 전환하고, 감상을 세분화하고 구체화해 최종적으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려주면서 그런 과정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고, 최애에 대한 해상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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