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소속 김모 경사는 “서울 여의도 집회에서 시민에게 ‘내란 공모범’이라고 손가락질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군·경 수뇌부가 12·3 비상계엄 사태에 가담하거나 명령을 적극 거부하지 않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시민들의 비난이 일반 하위직 군인과 경찰에게도 향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교통 관리를 하는 경찰에게 ‘내란 공범’이라고 비난하거나 학교에서 경찰·군인 자녀들이 친구에게 놀림당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로 훼손된 국가 안보와 시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군경의 사기도 말이 아니다.
일선 군경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계엄령 선포에 충격받은 ‘제복 입은 시민’으로 여긴다. 사명감만큼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다.
육군 대위 최모씨(28)는 “21세기 대통령이 12·12 때처럼 군인을 사조직으로 부리는 모습을 보며 큰 배신감을 느꼈다”며 “엘리트 장교도 반헌법적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모습을 보며 직업에 회의감을 갖게 됐다”고 했다. 여의도 집회 안전 관리에 투입되고 있다는 30대 경위 이모씨는 “일부 경찰 수뇌부의 오판으로 조직 전체가 계엄 동조 세력으로 비치는 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면 군경 이탈이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작년에 제대한 직업군인은 9481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경찰 역시 올해 9월까지 퇴직자가 1631명으로 지난해 수치(1469명)를 넘어섰다. 한 경찰은 기자에게 “수뇌부가 인간적으로 고심했다는 흔적도 봐달라”고 했다. 실탄 휴대 금지를 지시하고 총을 뒤로 메도록 한 군 지휘관, 시민과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허용해 ‘대통령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등 순간순간의 항명이 모여 국회가 정상화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비민주·반헌법적 비상계엄에 시민들이 분노하는 상황에서 이런 얘기는 죄를 모면하려는 의도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군인과 경찰 대다수는 ‘계엄 없는 시대’에 태어난 민주 군경이라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자신이 속한 조직이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에 가담했다는 점이 젊은 군경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남겼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이들을 보듬고 잘못된 명령에 거부할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이번 12·3 계엄 사태의 후유증을 치유해가는 과정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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