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프로그램 '빨간불'…"정책 동력 약화 불가피"

입력 2024-12-14 17:01   수정 2024-12-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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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대통령이 법적 직무 정지 상태가 되면서 금융투자업계에선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을 비롯해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자본시장 정책 동력이 상당폭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밸류업 무색…외인·개인, 8일간 3.5조원 '셀코리아'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령 선포와 해제 직후인 지난 4일부터 전날까지 외국인투자자는 외국인투자자는 국내 상장주 약 9630억어치를 던졌다. 이 기간 개인투자자의 매도세는 약 2조5265억원에 육박한다. 정부가 올초부터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증시 접근성을 끌어올리고,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기업의 주주환원 제고를 유도해 외국인·개인투자자의 국내 증시 투자를 더욱 늘리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 결과다.

계엄 사태 이후 한국거래소의 밸류업 지수를 활용한 상장지수펀드(ETF)도 대부분이 하락세다. 지난 4일 이후 TIMEFOLIO 코리아밸류업액티브는 3.65% 내렸다. TRUSTON 코리아밸류업액티브는 3.03% 하락했다.

이 기간 국내 증시 하락세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힘입은 섹터에 집중됐다.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으로 구성된 KRX은행 지수는 지난 4~13일 9.24% 내렸다. 같은 기간 KRX보험지수는 7.73%, KRX증권지수는 5.04% 떨어졌다. 동기간 코스피지수가 내리막을 타다 회복세에 접어들어 0.23%까지 하락폭을 줄인 것과는 딴판인 분위기다. 국내 증시 투자자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밸류업 정책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서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 밸류업 기대 소강세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경우 대통령 파면 이후 60일 이내 후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바뀐다는 것은 정책 지형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라며 “밸류업이 윤 정부의 '역점사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시장에서 밸류업 정책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러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밸류업 일관 추진'이라지만…인센티브 이미 무산
금융당국은 일단 밸류업 프로그램을 일관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전날 한국증권학회 주관으로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자본시장 국제 컨퍼런스(CAFM)’ 행사에서 “밸류업 등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은 긴 호흡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당초 일정과 계획에 따라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금투업계에선 당국의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수단부터가 확 줄었다는 반응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뒷받침할 각종 제도가 이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납입한도 확대 등 국내 증시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이 대표적이다. 주주환원을 확대하는 등 밸류업 정책에 적극 동참한 기업에 법인세 세액을 일부 공제해주는 세제 지원안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개인과 기업에 각각 줄 수 있는 '당근책'이 없어진 셈이다.

기업들의 참여도 부쩍 낮아진 분위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 지난 13일까지 상장기업의 밸류업 공시는 열 두건에 그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아홉 곳, 코스닥 상장사 세 곳 등이다.

이중 코스피200에 들어가는 기업은 다섯 곳 뿐이다. 당초 당국과 한국거래소 등이 연말에 사업 계획을 잡은 기업 100여개곳의 밸류업 공시 참여를 기대했던 것 치고는 초라한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의 재무담당 임원은 "주주가치 환원 등 대원칙에는 동감하지만, 기업으로선 정국이 어떻게 풀릴지 좀 더 차분히 본 뒤 대응하려 한다"며 "현 시점에서 굳이 밸류업 공시를 서두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부스트업' 추진…상법 개정 주장도 관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밸류업 프로그램의 대항마로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는 점도 밸류업 정책 향배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정부의 정책 동력이 약화한 와중 야당이 새로운 자본시장 활성화 대책에 힘을 실을 수 있어서다.

야당은 지난 7월 발표한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는 △이사회 충실의무 대상을 전체 주주로 확대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 △감사 이사 분리 선출 단계적 확대 △대기업 집중투표제 확대 △소액주주 의결권 행사 확대 등 5대 과제가 골자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달리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 증시 저평가를 해소한다는 구상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 개정도 정부안의 표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정부는 이달초 자본시장법을 일부 바꿔 기업 인수합병(M&A), 쪼개기 상장 등을 할 때 기업이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를 보다 더 고려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자체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추진하고 있다. 기존엔 회사로만 명시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는 당초 여당을 통해 지난 3일 발의한 정부안을 두고 야당과 협의를 한다는 방침이었으나 탄핵 정국이 본격화하면서 여야간 협의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계속될 것...방법론의 문제일 뿐"
금투업계에선 탄핵 정국과는 별개로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움직임이 계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정책의 내용이 달라질지언정 국내 증시 활성화 노력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어느 누가 언제 정권을 잡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주요 어젠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내 기업의 자금조달부터 개인들의 자산 형성까지 국내 경제 주요 요소가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법론이 일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큰 흐름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같은 이유로 기업들이 이미 공시한 기업가치 제고안 또한 상당수가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윤정 LS증권 애널리스트는 "만일 정권이 변화할 경우엔 현 야당이 우선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부의 전략이 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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