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구글 모회사), 아마존, 메타(페이스북 모회사), 애플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눈에 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필두로 한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가 차기 행정부 요직을 차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국 우선주의와 첨단기술 패권을 추구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정책에 힘이 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지지 철회한 베이조스
15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빅테크 CEO들이 잇달아 트럼프 당선인 자택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하고 있다. 아울러 다음달로 예정된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 기부금을 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기술산업계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며칠 안에 마러라고를 찾는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2일 뉴욕증권거래소 행사에서 “베이조스 창업자가 다음주에 온다”고 밝혔다. 과거 민주당을 지지한 베이조스 창업자는 이번 대선 직전 중립을 선언했다. 지난주엔 아마존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 취임식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그는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땐 27만6000달러를 냈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CEO와 세르게이 브린 창업자는 12일 마러라고를 방문했고, 팀 쿡 애플 CEO는 그다음 날 트럼프 당선인 자택에서 만찬을 함께했다. 지난달 26일 발 빠르게 마러라고에서 트럼프 당선인을 만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주에도 차기 정부 취임식에 기부금 100만달러를 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도 100만달러 기부 대열에 합류했다.
○“머스크 CEO 본받자”
실리콘밸리는 과거 자율과 창의를 내세워 정부와 거리를 뒀다. 일부 기업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정책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정부와 ‘끈끈한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지 않으면 사업상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정보기술(IT)업계가 편파적이고 반경쟁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페이스북이 2020년 대선에서 자신의 패배를 획책했다며 “(저커버그 CEO가) 또 불법을 저지르면 평생 감옥에서 보낼 것”이라고 협박했다. 벤처 투자가 출신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은 8월에도 “구글은 너무 크고 강력하다”며 “해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이팔 마피아 인사들이 트럼프 당선인을 적극 지지한 뒤 승승장구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머스크 CEO와 데이비드 색스 크래프트벤처스 창업자가 각각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공동수장, 인공지능(AI) 암호화폐 차르에 각각 임명됐다. 브라이언 휴스 트럼프 인수위원회 대변인은 “색스 창업자는 온라인에서 자유로운 발언을 보호하고 거대 기술 기업의 (정치적) 편향과 검열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합심해서 중국 견제
미국 정부가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독점 이슈 등을 관대하게 처리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쿡 CEO는 지난주 트럼프 당선인을 만나 유럽연합(EU) 등 외국 정부와의 분쟁에 관해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9월 아일랜드와의 소송에서 패소해 143억유로를 물어냈다. 구글은 연방 법무부와 광고·검색엔진 독점 혐의로 소송 중이다. 미국 법무부는 구글이 인터넷 브라우저 크롬,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부문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날 미국 국무부는 8월 만료된 중국과의 과학기술협정(STA)을 5년 연장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무부는 “중국과의 과학·기술 협력은 미국에 이익이 되고 안보 위협을 최소화하도록 보장한다”며 “협정은 기초 연구에만 적용되고 핵심·신흥 기술 개발은 촉진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