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총선에 패배하면서 주요 정책은 22대 국회 들어서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좌초됐다. 야당의 입법 폭주와 탄핵 남발에 정치적 해법이 아니라 반헌법적 계엄 선포라는 카드를 꺼내 직무정지에 이른 것도 ‘정치하지 않는 대통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윤 대통령은 임기 초 파격 행보를 보였다.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기고,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을 도입했다. 취임 열흘 만에 한·미 정상회담을 열며 한·미 동맹 강화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6월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7곳 중 13곳을 가져오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취임 두 달 만인 7월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며 정부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친윤(친윤석열)계 중심으로 당시 당 대표인 이준석 의원을 징계·퇴출한 사건이 계기였다. 이 의원 퇴출은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2030세대 남성 지지층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선거연합(2030세대+6070세대)’을 깬 것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상 선거연합보다 통치연합이 커야 정권이 유지가 되는데 이번 정부는 반대로 갔다”며 “지난해 3월 전당대회 과정에서 안철수 나경원 의원 등 비윤계 인사를 배척한 것도 지지 기반을 축소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보도는 정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 등 이른바 ‘김건희 여사 리스크’는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이어 4월 총선까지 최대 악재로 작용했다. 이번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김 여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국민 사과부터 법적 처벌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정무적 판단인데 법적으로 잘못한 게 없다는 인식이 화를 키웠다”고 말했다.
4·10 총선 대패로 윤 대통령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그럼에도 야당 대표와 한 차례만 대화하고, 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에 대해 총 25차례 거부권을 쓰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그 결과 노동·교육·의료·연금 등 4대 개혁과 저출산 문제 해결 등 ‘4+1 개혁’은 흐지부지됐다. 결국 윤 대통령은 입법과 상관없는 외교·안보 분야에 집중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 한·미·일 동맹 강화, 체코 원전 수출 등의 성과를 올렸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는 “독재자인 북한 김정은과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회담하는 것이 정치인데, 윤 대통령은 정치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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