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탄핵 정국에 따른 혼란이 정점이던 지난 9일 기준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7.7배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7.8배) 때보다 낮은 사상 최저 수준이다. 최근 10년간 코스피지수의 평균 12개월 선행 PER은 약 10배였다. 9일 이후 코스피지수는 소폭 회복했지만 여전히 ‘역사상 가장 싼 수준’을 맴돌고 있다.
국내 상장사들의 주가는 비슷한 실적을 내는 외국 기업들과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미국과 인도의 PER은 20배가 훌쩍 넘고 대만 자취안지수는 16.7배,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15.3배다.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되는 점은 주식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역대급 할인 중’이라는 점 외에는 마땅한 동력이 없다 보니 반등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는 “탄핵 가결로 정국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된 점은 다행이지만 미국 증시와 암호화폐 시장으로 떠난 투자자들을 당장 되돌아오게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대만 PER의 절반도 안돼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역사적 저점인 7.7배 수준으로 떨어진 점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지난 10년 동안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PER은 평균 10배 수준이었다. 9배 밑으로 떨어진 건 2008년 금융위기(7.8배), 2018년 미·중 무역분쟁(8.5배), 2020년 코로나19 확산(7.9배) 세 번뿐이다.
국내 증시의 저평가 수준은 다른 국가와 비교하면 더 뚜렷해진다. 지난달 5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 승리를 확정한 이후 코스피지수는 3.20% 떨어졌다. 같은 기간 S&P500지수는 4.64% 상승했다. 일본(2.59%), 중국(0.14%), 대만(-0.37%) 등 주변국 증시와 견줘도 유독 한국 증시의 낙폭이 컸다. 그 결과 한국 증시의 PER은 대만(16.7배), 일본(15.3배)의 절반 이하로 추락한 상황이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내년 국내 상장사의 주당순이익(EPS) 증가율 예상치는 22%로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높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걷히면 저평가 매력이 부각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의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이번 계엄과 탄핵 사태로 국장에 환멸을 느끼고 미국 증시로 자산을 이전한 고객이 많다”며 “달러 강세와 미국 증시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있어 이 같은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을 비롯해 정부가 추진 중인 각종 자본시장 정책의 동력이 꺾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밸류업이 윤 정부의 역점 사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시장에서 밸류업 정책 자체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들 가능성이 크다”며 “야당이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법 개정안과 기업 규제 법안들도 증시에 악재로 등장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철강 등 대형주 가운데 뚜렷한 주도주가 보이지 않는 것도 부담이다. 특히 과거 위기 때마다 증시 반등을 앞장서서 이끌던 삼성전자의 부진이 깊어지고 있는 점이 뼈아프다.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이 8조원 정도에 그쳐 어닝 쇼크 수준이던 3분기(9조1000억원)에도 못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