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출전한 선수 1140명(회원 기준) 가운데 우승해본 선수는 221명이었다. 1978년 창설 이후 46년간 단 한 번이라도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는 20%(16일 현재)도 안 된다. 900명 넘는 선수가 우승 경험이 없으며 배소현(31)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초까지는 그랬다. 2017년 KLPGA투어에 데뷔한 배소현은 지난해까지 정규투어 우승 기록이 없었다. 7년 동안 한때 시드를 잃고 드림(2부)투어로 내려간 적도 있다.
올해의 배소현은 달랐다.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지난 5월 E1 채리티 오픈에서 30대의 나이로 생애 첫 승을 따내더니 시즌 3승까지 거두며 공동 다승왕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경기 용인시 수원CC 연습장에서 배소현을 만났다. 그는 “허리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까지 했었는데 첫 승을 넘어 3승까지 기록한 2024년은 잊지 못할 한 해”라고 밝혔다.
배소현의 개인 코치이자 캐디백을 메고 함께 투어 생활을 했던 배씨는 2018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배소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부끄럽지 않은 골프선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려고 노력했다”며 “올해 첫 승을 하고 나니 감사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배소현은 지금도 힘든 순간마다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창피한 거 얼마 안 간다. 잠깐이다. 하기만 하면 된다.” 13년 전인 2011년 세미 테스트에서 떨어진 배소현에게 그가 한 말이다. 배소현은 “골프를 치다 보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많은데, 그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긴다”고 말했다.
배소현의 내년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세계랭킹 50위 진입, 두 번째는 해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세 번째는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16일 기준 배소현의 세계랭킹은 73위다. 세계랭킹 50위 내 진입을 최우선 목표로 잡고 싶다는 그는 “올해도 3승한 뒤 세계랭킹 50위 안에 드는 걸 목표로 했는데, 시즌 막판에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혀 많이 끌어올리지 못했다”며 “내년엔 시즌 초반 랭킹을 올리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세계랭킹 50위를 목표로 잡은 것도 자신의 골프를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함이다. “50위 안에 들면 해외투어 대회에 많이 출전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아요. US오픈이나 에비앙 챔피언십 등에 나가는 것 자체가 선수로서 성장할 발판이 될 거예요. 제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요.”
용인=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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