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sim)’라는 용어가 금융 시장에 회자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차이가 있는, 예외적인 나라라는 생각은 정치적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예컨대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공화제를 국가 체제로 선택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왕정에서 시작해 치열한 혁명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것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1920년대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은 계급투쟁의 이데올로기가 먹혀들지 않는, 다시 말해 공산화 가능성이 아주 낮은 나라라는 뜻에서 ‘예외적’이라고 불렀다. 반면 지금의 ‘미국 예외주의’는 정치나 도덕적 가치의 차원이 아닌 경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미국 역시 다양한 사회, 정치적 문제를 안고 있어 전통적인 의미의 예외주의는 빛이 바래고 있지만 경제 분야에서만큼은 ‘예외적’이라는 평가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경제 규모 세계 1위 거대 국가의 성장률이 다른 나라를 압도하고 주가 상승세도 독보적이다. 유일한 경쟁자로 떠오르던 중국이 과잉 투자에 의존한 성장 모델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주춤거리는 것과 때를 같이해 ‘미국 예외주의’는 더욱 힘을 얻어 가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 예외주의 지속을 점치는
세 가지 이유
넓은 영토, 대서양과 태평양을 동과 서에서 접하고 있는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 막대한 천연자원, 달러 패권, 경제적 이익을 지켜낼 군사력, 세계의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자력(magnetic power) 등을 생각할 때 앞으로도 미국이 경제 면에서 예외적 지위를 누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유일한 도전자였던 중국이 G2의 위치를 공고히 하려고 절치부심하겠지만, 당분간은 미국의 패권을 흔들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정책 역량을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목표 실현에 쏟아부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 예외주의는 더 강건해질 공산이 크다. 전 세계는 ‘America first’와 ‘American exceptionalism’이 서로를 강화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증시와 관련된 관점으로 좁혀 보더라도 미국 예외주의는 이어질 것이라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물론 과도한 자국 이익 지키기 정책이 역풍을 불러올 위험도 있지만, 강한 고용에 뒷받침되고 있는 민간소비와 인공지능(AI) 관련 자본지출, 금융 완화 기조에 따른 기회 요인이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요인을 하나씩 짚어보자.
? 강한 고용과 소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8%를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다. 70%에 가까운 민간소비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으로 미국의 재정·통화 정책은 민간소비, 그리고 활기찬 민간소비를 가능케 해주는 고용 확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고용과 소비가 견조하면 대외 환경이 불리하게 변하더라도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고 내생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 때 미국은 막대한 재정지출을 통해 가계소득을 직접 지원했는데 그 당시 가계가 저축해 놓은 자금들이 순차적으로 소비에 활용되면서 소비→고용→소비의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운 고용 시장과 견조한 소비는 미국 경기를 낙관적으로 내다보게 만드는 핵심 근거가 되고 있다.
? AI 관련 자본지출
미래 먹거리인 AI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설비 투자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32년 생성형 AI와 관련된 매출은 약 1.6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본격적 수확의 시기에 더 큰 파이를 차지하려는 관련 기업들의 선제적 투자는 2022~2032년 10년간 2.2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2025년 한 해만 하더라도 약 2000억 달러(약 280조 원)에 이르는 투자가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에 의해 집행될 것이며, 기관에 따라서는 전력 인프라를 포함해 5000억 달러의 투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규모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낙관적인 성장 기대감이 AI 기업들의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 금융 완화 사이클
미 중앙은행(Fed)은 2024년 9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11월에도 한 차례 더 금리를 낮추었다. 이에 따라 5.5%였던 연방기금금리 상한은 4.75%로 0.75%포인트 낮아졌는데 블룸버그는 2027년 연방기금금리의 상한이 3% 초반까지 낮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장기 금리도 하향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기적 금융 완화 사이클에 들어섰으며, 이는 기업의 조달금리를 낮춰 투자를 촉진하고 빚을 지고 있는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미국 증시는 요 몇 년 사이에 높은 수익률을 냈는데 시간을 좀 더 먼 과거로 돌리면 그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1990년 이후 주요 지수의 누적수익률을 보면, 나스닥100은 1041%, S&P500은 1680%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익률로서 미국 증시는 오랜 기간 동안 차별적이고 예외적인 성과를 거두어 왔다. 물론 때에 따라 불안한 변동성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이를 이겨내고 분명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단기적인 불안정성을 감내할 수만 있다면, 자산관리 측면에서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는 이제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닌 영역이 됐다.
국내 상장 ETF로 미국 증시에 투자하기
워런 버핏은 개인들이 시장 평균수익률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비용이 낮은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한 바 있다. 그의 조언을 따른다면 대표적인 인덱스형 ETF로 미국 대표지수에 투자하는 것이 기본에 충실한 투자 방법이라 하겠다.
국내에서 원화로 투자하는 경우 원·달러 헤지 ETF(H)(449180·449190)와 비교할 때 환노출 ETF의 성과가 탁월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미국보다도 낮아지는 상황에서 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를 늘리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환노출형 ETF는 간접적으로 달러에 투자하는 상품인데 특히 토털리턴(TR) 상품의 경우(379800·379810)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배당금을 자동으로 재투자해 복리로 수익률을 높이기 때문에 당장 현금이 필요하지 않은 장기 투자자에게 보다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국내 ETF 투자는 배당소득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종합소득세 면에서 다소 불리하다. 이 경우 달러로 환전해 미국 시장에 상장된 ETF에 투자한다면 매매차익이 분리과세가 되므로 높은 세율을 부담해야 하는 투자자에겐 유리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지수형 ETF는 다음과 같다.
미국 상장 ETF로 미국 증시에 투자하기
S&P500 추종 ETF의 경우 SPY와 VOO가 사실상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비용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개인의 투자 성향이나 장세에 대한 판단에 따라 조금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반대로 방어적으로 투자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장기 성장성(혹은 미국 예외주의)에 높은 신뢰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 정도의 변동성을 견뎌낼 수 있고, 상대적으로 적은 종목에 집중 투자하고 싶다면 성장주 ETF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상품에 따라 보유 종목과 비중에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비용이 가장 큰 선택 요소가 될 것이다.
반대로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부담감을 느낀다면 배당주 ETF에 투자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여러 종목으로 분산돼 있어 리스크가 적고 상대적으로 높은 배당을 기대할 수 있지만 수익률은 일반 지수형 ETF이나 성장주 ETF에 비해 낮다. 이런 선택을 할 때는 과거 1년의 평균 배당금을 현재 주가로 나눈 배당수익률이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될 것이며, 연초 이후의 수익률을 잘 살펴보면 운용사와 해당 ETF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주 2024년 12월 12일 기준.
이희상 KB증권 WM투자전략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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