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단숨에 넘어서면서 여행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안전상의 우려로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데 이어 내국인의 해외여행 예약도 멈추다시피 해 코로나 시절 수준으로 뒷걸음질 할 위기다. 환율 고공행진이 이어진다면 국내에서 달러를 송금받는 해외 유학생들도 휴학과 귀국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난 14일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환율 상승세가 빨리 진정되지 않으면 여행업 위기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있다.
여행업계에선 내국인의 해외여행 심리도 급속히 식고 있다. 환율이 한 때 달러당 1440원까지 치솟고, ‘1450원이 뚫리면 1500원도 시간문제’라는 진단이 나오면서다. 현대 달러 환율은 143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인에 대한 비자면제 조치 이후 현지 패키지여행 상품을 주로 팔았던 B여행사는 홈쇼핑 채널 판매를 당분간 멈추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B사 관계자는 “이미 비용을 받은 여행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연말에 출발 상품부터 신규 예약이 끊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여행객이 주로 찾는 유럽 여행 커뮤니티 ‘유랑’에는 ‘연말 영국에 갈 예정인데 파운드화가 폭등해 환전을 못 하겠다’, ‘중국행 왕복 비행기 삯이 하루 사이 70만원에서 90만원으로 올랐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귀국을 고심하는 해외 유학생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미국의 한 사립대 재학생 양모 씨(25)는 “한해 1억원 가량을 송금받고, 다음학기 등록금 납부도 머지 않았는데 환율이 20원만 올라도 타격이 크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에서 로스쿨에 다니는 이모 씨(24)는 “계엄 사태 이후 생활비 걱정이 더 커졌다”며 “대통령의 분노조절 장애 때문에 휴학해야 할지 고민할 일이 생길 줄 정말 몰랐다”고 토로했다.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본국에 부칠 돈이 당장 줄어든다. 서울 시내 베트남 음식점 종업원인 투이 응우옌 씨(23)는 “매달 월급의 절반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송금하는데 베트남 동화가 점점 비싸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모국에서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은행 창구에 몰리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 중국인 장(張) 모씨(25)는 “앞으로도 2년 이상 한국에서 살 예정이기 때문에 생각에 넉 달 치 생활비를 미리 환전했고, 주변에 다음 학기 등록금 350만원가량을 이미 바꿔놓은 친구도 많다”고 전했다.
다만 지난 14일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이같은 환율 변수의 영향력은 점점 적어질 것으로 보인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면서 국내 변수는 많은 부분 해소돼 환율 상승세가 다소 진정될 것”이라며 “다만 환 헤지를 할 수 없는 개인에게는 당분간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봤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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