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법안 거부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거부권 행사가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반면, 법조계에서는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거부권 행사는 탄핵 사유 아냐
17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이날 열리는 국무회의에 양곡관리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 6개 쟁점 법안 상정을 보류했다. 총리실은 재의요구안을 상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충분한 숙고와 논의를 거친 뒤 국회와 소통할 것”이라며 “마지막까지 여야 의견을 들은 다음, 금주 중 재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는 대체로 거부권 행사를 탄핵 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거부권 행사가 직무상의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인지에 대해서 다퉈봐야 하는데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정치권은 성숙한 협치를 통해 정국 수습에 힘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정사상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이 가결된 사례는 전무하다”며 “의결정족수를 떠나 민주당이 한 권한대행 탄핵을 추진한다면 국가적 불행이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고, 탄핵 남발 후폭풍도 작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한 권한대행이 거부권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임지봉 서강대 법전원 교수는 “한 권한대행의 법적 신분은 여전히 국무총리”라며 “학설에 따르면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권한을 소극적으로 행사하는 게 맞는다”고 강조했다.
탄핵소추 의결에 필요한 의석 수는?
한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할 시 필요한 의석 수를 두고는 의견이 갈린다. 대통령직을 대행하는 한 권한대행의 지위를 어떻게 볼 지에 헌법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해석이 나온다.한 권한대행을 대통령 대신 결재를 대신하는 국무위원으로 간주한다면 170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탄핵을 결정할 수 있다. 헌법 65조2항에 따라 국무위원 탄핵안은 의원 과반수만 찬성하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에게도 대통령과 동일하게 강화된 요건 (3분의 2 이상)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손인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시적으로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이외의 공직자는 구별되기 때문에 일반 정족 수 기준이 적용되는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한상훈 교수는 “총리이면서 동시에 권한대행이다보니 애매한 부분이 있으나 국무총리의 역할을 누가 하느냐 했을 때 여전히 총리가 하고 있기 때문에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소추안으로 투표하면 된다"고 했다.
이에 비해 관련 의안을 심의하고 올리는 국회에서는 대통령과 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한 상임위원회 전문위원은 “국가원수의 역할을 대행하더라도 그 권한 중지가 지니는 사안의 중대성은 동일하다”며 “200석 이상 동의로 탄핵안을 의결하는 게 헌법정신에 맞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 당시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2016년 12월 9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서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에 돌입했다. 당시 국회입법조사처는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시 필요한 정족수로 탄핵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