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돈 들어온다는데…" 품절 대란 벌어진 '귀하신 몸' 정체 [이슈+]

입력 2024-12-17 19:31   수정 2024-12-1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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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없다'는 말을 하루에 몇번씩 하는지 몰라요. 이달 첫째 주에는 오전에만 달력 문의로 80명씩 오셨어요. 평상시 종일 응대하는 고객 수보다 많은 인원이었습니다."

경기 남부에서 4대 은행 중 한 곳의 행원으로 근무하는 20대 김모 씨는 "올해 유독 달력 찾는 고객이 많고 소진 속도가 빨라 정신없었다. 일주일도 안 돼 모두 소진됐고 추가 주문량도 동났다"며 혀를 내둘렀다.

매년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인기를 끄는 은행과 관공서의 신년 달력이 올해는 더욱 성행하는 분위기다. 고물가·고금리로 경제적 어려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은행 달력을 집에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는 이른바 '달력 미신'이 특히 더 크게 작용해서다.
"달력 없어요"

현재 서울 시내 곳곳의 은행 문 앞에서는 '달력 없음'이라는 공지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17일 서초역 인근의 한 은행 직원은 달력을 구할 수 있냐는 질문에 "자사 계좌 고객에게 우선 배급했는데도 지난주에 모두 동났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날 점심께 해당 은행 인근에서 만난 70대 황모 씨는 "은행 거래를 하는 김에 달력이 있나 물었는 데 없었다"며 "구해서 자식들 줄 거다. 자식들 모두 돈복 터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도 신년 달력 구하기 열풍이 뜨거운 모양새다. 엑스(X·옛 트위터)에는 오랜 대기 끝에 은행 달력을 받았다는 인증부터, 출근길에 은행 문 앞 '달력 오픈런' 줄을 봤다는 목격담도 속출했다.

현장의 분위기를 방증하듯 이날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은행 달력' 키워드의 관련 검색량은 지난해 최고치 71을 기록한 날인 지난해 12월 4일보다 올해 최고치를 찍은 날이 12월 2일로 시점이 더 빠른데다 지수도 100으로 30가량 더 높았다. 해당 지표는 가장 검색량이 많은 날을 100으로 두고 상대적인 추이를 나타낸다.
조폐공사·성심당·약국도 '달력 전쟁'


특히 올해는 은행 달력 외에도 다양한 '달력 미신'이 유행을 끌고 있다. 실제 돈과 주화의 이미지를 달력 디자인으로 구성한 한국조폐공사의 달력은 다양한 화폐 이미지와 함께 화폐 제조 기관이라는 정체성까지 더해져 주요 관계 기관에만 배포됐음에도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을 붙여 거래되고 있다.

이에 조폐공사 측이 "달력 1만6000부를 제작해 주요 관계 기관 등에 무료 배포했다. 호응이 좋아서 소량 추가 제작을 고려하고 있다"며 입장을 밝힐 정도였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케이크 구매 고객에게 증정되는 성심당의 신년 달력도 벌써 인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배부일이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온라인에서 배부 기준과 일정이 화제 됐다. 평소에도 맛보기 어려운 성심당 빵에 행운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부여된 데다 신년에 '먹을 복' 가득하길 빌어보겠다는 취지다. 특히 성심당 달력에는 매달 사용할 수 있는 빵 증정 쿠폰이 들어있어 더욱 인기다.

'건강을 지켜준다'는 속설이 깃든 약국의 제약사 달력에도 관심이 쏠렸다. 경기 용인시에서 개인 약국을 운영하는 40대 박모 씨는 "달력을 구할 수 있냐는 문의를 많이 받는다"며 "작년에는 약을 사가던 손님만 물어보시는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종종 달력 있냐는 전화도 받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 다양한 '달력 미신'이 유독 유행하는 요인과 관련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불안감의 발로로 달력이 인기를 끈 것"이라며 "경제적, 사회적으로 다양한 외부적 불안 요소가 작용하면서 시민들이 추상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운에 기대어 보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불경기에 복권 판매액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심리라고도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달력의 절대적인 공급량 자체가 줄어든 것이라는 업계 분석도 나왔다. 시민들의 수요와 달리 기업들이 판촉용으로 제작하는 신년 달력의 제작 부수를 점점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과 불경기로 인한 마케팅 예산을 줄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을지로 인쇄 골목에서 기업용 달력과 다이어리를 제작하는 한 인쇄업소의 관계자는 "같은 기업에서 들어오는 주문량도 매년 조금씩 줄고 있다. 달력의 종류나 크기를 줄이고, 인쇄 디자인도 간소화해서 비용을 줄이는 식"이라며 불경기를 체감한다고 전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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