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헤지펀드 퀀타비움 최고투자책임자, 시티그룹 뉴욕 G10 채권 퀀트 트레이딩 대표, 베어스턴스 매니징 디렉터…. 영주 닐슨 성균관대 SKK SGB 교수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15년간 독보적인 경력을 쌓아 온 퀀트 투자 전문가다.
2015년부터 교수로 활동을 이어오던 그는 최근 스타트업 대표라는 이력을 추가했다. 핀테크 기업 ‘한국퇴직연금데이터’를 설립하고, 전공 분야를 살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연금 설계 서비스, ‘글라이드’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퇴직연금 상품들의 수익률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2024년 12월 4일 닐슨 교수를 만나 퇴직연금 이슈와 투자 전략에 대해 조언을 들어봤다.
- 월스트리트에서 AI 알고리즘을 통해 6조 원 이상의 헤지펀드를 운용했다. 일찍이 AI에 주목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1999년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커졌다. 월가에선 꽤 오래전부터 다양한 머신러닝 기법이 여러 분야에 적용돼 왔는데, 2015년 전후로 투자에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특히 강력한 컴퓨팅 파워가 뒷받침되면서 놀라울 정도로 기술과 방법론이 발전했다. 저는 오랜 기간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투자 결정을 내리는 퀀트 투자에 집중해 왔다. 이 경험들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연구, 교육, 그리고 퇴직연금 시스템 개선 관련 활동에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 저서 <월스트리트 퀀트 투자의 법칙>을 통해 투자에 대한 통찰을 공유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에서의 경험을 통해 배운 투자 원칙은 무엇인가.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 자산, 상품의 펀더멘털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 리서치다. ‘beating a dead horse(이미 끝난 일이나 해결된 문제에 대해 계속 언급하거나 노력하는 것을 의미)’라는 표현처럼, 리서치는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 더 이상 변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철저해야 한다. 퀀트 투자의 매력은 같은 데이터와 방법론을 사용하더라도 모델의 파라미터, 데이터의 처리 방식, 그리고 실제 구현 과정에서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항상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만큼, 깊이 있는 리서치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규칙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월가에서 배운 또 하나의 원칙 중 하나는 ‘돈을 잃어도 얼굴에 드러내지 말고, 큰 수익이 나도 절대 웃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투자가로서 감정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원칙이 저를 지켰다고 생각한다. 퀀트 투자를 하면 이런 감정적인 개입을 가능한 배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AI와 데이터 기술이 금융 산업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25년, 어떠한 변화가 예상되나.
“최근 금융권에서도 AI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기술 적용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2025년 역시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투자와 관련된 모든 프로세스, 특히 오퍼레이션, 인프라 관련 부분에서 확실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제가 창업한 ‘한국퇴직연금데이터’에서도 AI를 활용해 짧은 시간 안에 고효율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초반에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퇴직연금데이터’의 경우는 달랐다. 일례로, 데이터 레이블링 작업의 80% 이상을 자동화해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인 점이 고무적이다. 또한 기존에는 퀀트 투자에 입문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누구라도 약간의 프로그래밍 지식만으로 퀀트 기법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만 하더라도 과거에는 한 학기 동안 머리를 쥐어짜며 공부해도 간단한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약 6주 정도 노력을 투입하면 꽤 그럴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최근 2년 사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AI는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의 문턱을 낮춰주고, 전문가들에게는 더 정교한 전략 설계와 실행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다만, 이런 도구를 배우고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 ‘글라이드’ 서비스에는 어떤 식으로 AI가 적용됐나.
“모든 측면에서 AI를 활용하고 있다. 아이랩의 주요 타깃은 퇴직연금, 그중에서도 확정기여(DC)형, 개인형퇴직연금(IRP)을 보유한 모든 사람이다. 제공되는 서비스는 예를 들어, 12월에 IRP 세제 혜택을 강조하는 알림 메시지를 보내거나, 실적배당형 상품 전환 시 미래의 현금흐름을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또한 매일 글로벌 뉴스를 400자로 요약해 제공하고, 투자할 수 있는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정보를 연결해준다. 단순히 특정 상품을 추천하진 않는다. 대신 상품을 쉽게 찾거나 비교할 수 있는 기능을 넣었다. 주요 수익률, 주식과 채권 비율 등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대부분의 플랫폼이 자산 배분 비율이나 상품별 비교 정보를 정확히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는 이런 비교 정보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투자자들이 손실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프로페셔널 트레이더는 항상 투자할 때 최소 두 가지 숫자를 염두에 둔다. ‘최대 얼마나 벌 수 있는가’와 ‘최악의 경우 얼마나 잃을 수 있는가’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두 번째 숫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이는 투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 교수로 일하면서 퇴직연금 관련 스타트업을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
“저는 20여 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또한 배우자가 노르웨이 사람이기 때문에 노르웨이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삶과 시스템을 이해하게 됐다. 미국, 노르웨이, 한국을 비교하면서 큰 차이를 발견했다. 미국과 노르웨이에선 연금을 통한 노후소득대체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이런 상황에 깊은 의문을 갖게 됐다. 제가 본 가장 중요한 문제는 퇴직연금에 있었다.”
- 왜 노후소득대체율에 차이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나.
“한국 지인들 중에는 교육 수준과 연봉이 꽤 높은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 퇴직 이후를 걱정한다. 미국이나 노르웨이에서는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은퇴에 대해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연봉이 한국보다 더 높아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퇴직연금 제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미국에서 1999년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401K 제도’를 통해 퇴직연금을 적립해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선 20년 정도 일하면 은퇴 시 ‘백만장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는 역사도 짧고, 실적배당형 상품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았다. 또한 실적배당형 상품이라 하더라도, 트렌드나 테마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퇴직연금은 안정성과 장기적인 성과가 중요한 만큼, 단기적인 트렌드를 좇기보다 기본적인 자산 배분에 초점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의 키는 무엇일까.
“퇴직연금 수익률 개선의 키는 약 90%에 해당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실적배당형으로 옮기는 것이다. 특히 적정한 자산 배분 펀드, 타깃데이트펀드(TDF) 등을 통해 세금을 최적화시키면서 장기 투자를 하는 게 중요하다. 국내 TDF는 최근 들어 상당히 좋은 펀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퇴직연금 사업자들도 이 시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잘 대응하지 않으면 외면받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일관적인 운용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트럼프 2기’ 시대 유용한 투자 전략에 대해 조언한다면.
“미국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의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곧 이자율의 상승으로 연결된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상품에 대해 60%의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시행될 경우 미국 소비자들에게 더 높은 비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또한 특정 상품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선택적 관세는 공급망이 추가 비용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신속히 조정되지 못할 경우 훨씬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이민 정책은 또 다른 인플레이션 요인을 제공한다. ‘대규모 이민자 추방’은 노동력 공급을 줄이고 더 높은 임금 상승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인플레이션을 헤지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자산으로는 금, 물가연동채권(TIPS) 등이 있다. 일부에선 비트코인이 금을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글로벌 투자자들한테 가장 큰 위험은 일관성과 지속성의 부족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일관된 정책과 규제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건강한 투자 문화를 형성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정확한 룰, 그리고 감시 시스템을 통해 그에 따른 당근과 채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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