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험난한 불의'의 시대를 사는 법

입력 2024-12-17 17:29   수정 2024-12-1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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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亂世)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힘든 판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계엄 선포’라는 폭탄을 던진 후 나라 꼴이 엉망이다. 분노 조절 장애와 유튜브·알코올 의존증이 의심될 정도로, 즉흥적이고도 반헌법적인 일탈의 결과다. 전시나 사변에 의한 계엄이 아니라, 계엄 선포 때문에 전시가 된 양상이다.
'4류 정치'가 남긴 깊은 상처
국민의힘은 이 와중에도 “1년 지나면 국민들이 다시 찍어준다”는 천박한 망상에 사로잡힌 채 계파 간 권력 투쟁만 벌이고 있다. 12개 범죄 혐의로 재판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시계만 쳐다보며 이번 사태를 만끽 중이다. 정부 관료에 대한 연쇄 탄핵소추와 입법 폭주로 국정을 마비시켜온 거대 야당은 이번 위기를 틈타 극단적 포퓰리즘 법안을 또 쏟아낼 태세다. 와중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 경찰은 내란 수사의 주도권을 놓고 쟁탈전에 한창이다. 군인들을 국회로 끌고 왔던 장성들은 앞다퉈 유튜브에 나와 양심선언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엄중한 동시에 코미디 같은 시대를 맞았다.

대가는 혹독하다. 불법 계엄이 통치 행위라는 궤변에 기대던 윤 대통령은 끝내 14일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어느 정도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경기 침체와 맞물린 정치 혼란의 후유증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주식·외환시장은 연일 살얼음판이다. 해외 투자자들은 내수 시장의 하방 위험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를 앞다퉈 쏟아낸다.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등 전 금융사는 매일 건전성과 유동성을 점검하며 가슴을 졸인다. 기업인들은 “납기를 제대로 맞출 수 있겠느냐”는 해외 바이어의 질문에 할 말을 잃고 주저앉았다. 자영업자들은 하나둘씩 가게 문을 닫고 있다. ‘코리아 밸류다운’의 서막이다.

더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이, ‘4류 정치’가 국민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점이다. 내 나라의 군인이 적이 아닌 내 얼굴에 총을 겨눌 수 있다는 공포감, 경제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정치 후진국임을 깨닫게 된 허탈함, 당연하게 여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가 한 번에 흔들릴 수 있다는 충격과 자괴감. 모든 게 씻어낼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됐다.
각자 책임감 갖고 일상 임해야
우리는 어떻게 난세를 살아야 하는가. 그 힌트는 공교롭게도 김건희 여사의 모교인 명일여고에 붙은 ‘대통령 부부는 들어라’라는 제목의 대자보에 녹아 있다. ‘(대통령이) 국민을 무시해도 사회가 돌아가는 것은 (국민이) 멍청해서가 아니다. 누구와는 달리 (국민들은) 책임감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관료부터 영혼을 부여잡고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 웅크리지 말고 똑바로 서서 민생을 어루만지길 바란다. 글로벌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선 기업인들은 어김없이 산업 현장을 떠받쳐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생존을 담보해주는 방파제 역할은 금융인들의 몫이다.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딸도 회사와 식당, 가게, 학교에서 각자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야 한다. 책임감의 무게를 어깨에 이고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 미뤘던 송년회도 하자. 그게 ‘험난한 불의(不義)’에 맞서 난세를 버텨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우리 모두를 위로한다. 그리고 건투(健鬪)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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