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에 자동차 금형을 납품하던 A사가 기업회생(법정관리)에 들어간 건 지난 4월. 지난해 떠안은 영업손실 13억원의 무게는 생각보다 버거웠다. A사 대표는 “팬데믹 이후 은행권 대출이 막히고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까지 겹쳐 속수무책이었다”고 토로했다. 22년 업력을 지닌 공기청정기 제조 및 전자기기 유통업체 B사는 지난달 손실 누적으로 법인 파산을 신청했다. 삼성전자, LG전자의 대리점 사업을 따내고 캐논코리아 총판을 맡았지만 장기 불황의 벽을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올 한 해 장기 불황과 고금리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이 파산·폐업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한 자동차 부품사 대표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장기 불황, 중국산 저가 공세, 미국발 수출 리스크,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 생태계 전체가 7중고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전자펜 제조업체 C사도 지난달 파산을 신청했다. 300만불 수출탑을 받을 정도로 성장세를 보이다가 원자재 값 등 비용 부담 증가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소형 가전 제조업체 D사도 적자 경영 끝에 올해 9월 폐업 처리했다. 20여 명이던 직원을 절반 이상 줄이며 발버둥 쳤지만 더 이상 적자 경영을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업인이 가장 큰 경영 부담 요인으로 꼽는 사항은 대출 이자와 임차료 상승이다. 서울 독산동에서 10년 넘게 금형 사업을 해온 경진금형은 작년 하반기 이후 수주량이 줄자 몇 달치 임차료를 내지 못해 지난 10월 폐업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일감이 줄었는데 매달 내야 할 대출 이자와 임차료 부담은 거꾸로 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대출 잔액은 2020년 832조6000억원에서 2023년 1037조6000억원으로 처음 1000조원을 돌파한 뒤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폐업 길에 들어설 기업이 줄줄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공장 일부 라인만 가동하거나 가동 시간을 줄이는 제조업체가 많아졌다. 인천 고잔동에서 자동차 부품 도금·표면처리 회사를 운영하는 F사 대표는 “수주가 줄면서 올 들어 직원을 주 3일만 출근시키고 있다”며 “올해 매출은 작년보다 약 4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시흥공단의 가구 제조업체 H사는 “8개 라인 중 3개만 가동할 정도로 수주 물량이 줄었다”고 했다.
국가 전체가 탄핵 정국에 휩쓸리며 불확실성이 커진 점도 불안감을 키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몇 달 사이 내수와 수출 환경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며 “보증 한도 확대 등 제대로 된 정책 지원으로 한계에 몰린 기업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시흥·화성=민지혜/이미경/최형창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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