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쟁력을 잃은 한국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상대해 주겠습니까.”
1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국공학한림원 반도체특별위원회 연구 결과 발표회에 참석한 한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와 테크 이해도가 깊다”며 “한국이 최고의 대미 협상 카드를 잃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 비밀 병기인 부지런함이 없어지고 있다”며 “30분만 더 하면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퇴근하고 다음날 다시 시작해 집중력과 효율성을 낭비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반도체 인재 부족과 두뇌 유출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이 교수는 “반도체 생태계에 인재는 유입되지 않는데 해외로 유출되는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22년엔 국내 반도체 인력이 1784명 부족했지만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31년엔 5만4000명가량 모자랄 것으로 전망했다.
발표회에선 반도체가 평생 직업이 되도록 사학연금과 같은 반도체 특별 연금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반도체 장비 기업인 원익의 이현덕 부회장은 “반도체 연금과 관련해 업계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며 “중소기업에 특히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위는 한국이 선도적 투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반도체 제조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적시 투자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메모리 기술 및 첨단 패키징 기술 등에 선제적 개발과 시설 적시 투자를 위한 300조원 규모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고, 조성 중인 경기 용인 클러스터가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용수 및 전기가 제때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도체 제조 기반 산업인 소부장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행사에 참여한 반도체 기업 관계자는 “국내에서 생산한 소부장 제품을 국내 수요 기업에 판매할 경우 인센티브 지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패키징(후공정)산업 육성을 위해선 첨단 패키징 개발, 제조, 검증, 인증 평가를 할 수 있는 대규모 전문 공공연구기관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대만의 TSMC처럼 국가가 지분을 갖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KSMC’를 만들고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제언도 나왔지만, 참가자들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초격차를 유지하던 D램도 위기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8)의 지난달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1.35달러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2.1달러에 달하던 가격이 넉 달 만에 30% 넘게 폭락했다. D램 가격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이다.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푸젠진화(JHICC)는 기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D램을 쏟아내고 있다.
공학한림원은 학계, 산업계, 국가기관 등에서 공학 기술 발전에 현격한 공적을 세운 우수 공학 기술인을 우대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학술 연구기관이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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