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는 올해 ‘반도체 겨울론’을 비웃듯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추격자에서 단숨에 개척자로 올라서며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까지 채갔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수요가 폭증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이 주효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HBM 성공 신화의 주역이다. 곽 사장은 SK하이닉스에서 약 30년간 메모리 반도체 공정 연구, 제품 개발, 제조 등 연구개발(R&D)과 생산 현장을 두루 거쳤다. 특히 D램, 낸드 개발과 생산을 주도한 ‘수율’ 전문가다. 생산 경쟁력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2022년 사장 자리에 오른 후에는 메모리 법칙의 변화를 일찌감치 예견하며 기회를 읽었다.
AI 시대가 도래하자 대용량 D램인 HBM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전면에 등장했고 2013년부터 HBM 개발에 나섰던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손잡으며 이 시장 1위에 올랐다.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경쟁력뿐만 아니라 ‘범용’에서 ‘고객 맞춤형’으로 변하는 시장에 적극 대응하는 전략이 먹혔다.
곽 사장은 창립 40주년이었던 2023년 “그동안 범용제품으로 인식돼왔던 메모리 반도체의 과거 방식을 벗어나 고객을 만족시키는 회사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흐름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설계 및 생산 방식까지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차별화했다.
특히 4세대인 HBM3, 5세대인 HBM3E에 이어 맞춤형(커스텀) 제품인 HBM4(6세대)까지 고객사에 공급하기로 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다. 올해 3분기 D램 매출 중 HBM 비중은 30%로 확대되는 등 실적에서도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곽 사장의 다음 목표는 ‘풀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다. AI 기술에 필요한 모든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겠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올해 8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6세대 1c 미세공정을 적용한 16Gb(기가비트) DDR5 D램 개발에 성공했다. 회사는 연내 1c DDR5 양산 준비를 마치고 내년부터 제품을 공급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성장을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낸드 부문에서도 지난 11월 세계 최고층인 ‘321단 1Tb(테라비트) TLC 4D 낸드플래시’를 양산하기 시작하는 등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도 지속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차세대 HBM 생산을 위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 인디애나 팹에서는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HBM 등 AI 메모리 제품이 양산될 예정이다.
국내 생산 기지 투자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급증하는 AI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청주캠퍼스에 M15X를 신규 건설하여 D램 생산기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2025년 11월 준공 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AI 메모리 성능 한계 돌파를 위해 파운드리 1위 기업 TSMC와도 글로벌 협력을 긴밀하게 이어 나간다. SK하이닉스는 TSMC와 MOU를 체결하고 HBM4 개발 및 어드밴스드 패키징 기술 협력을 진행한다. 고객-파운드리-메모리로 이어지는 3자 간 기술 협업으로 2025년 HBM4를 양산한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곽 사장이 제시한 ‘풀스택 AI 메모리 프로바이더’의 비전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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