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구글의 사업 부문 중 하나인 딥 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한국의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AI는 이후 예상과 달리 그 쓰임새가 빠르게 퍼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2022년 11월 미국의 스타트업인 오픈AI사가 챗GPT를 처음 선보인 후 세계는 AI가 일상에서도 쓰인다는 걸 알고 놀랐다. 본격적인 AI 2.0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생성형(generative) AI 기술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소프트웨어에도 빠르게 접목되어 그 쓰임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보편적인 AI를 사용한 인터넷 서비스는 B2C는 흔히 언론에서 많이 다뤄져 소비자에게 친숙한 생성형 AI 프로그램이다. OpenAI, Anthropic, x.AI, Perplexity 등의 미국 스타트업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B2B) 한 서비스는 기존 소프트웨어업체가 제품에 AI 기능을 추가해 제공하면서 시작됐다.
AI 학습과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반도체 설계와 생산이 추가적으로 필요했다. 그 결과 미국의 엔비디아, AMD, ARM,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주목을 받았다. 비상장업체 중에는 미국의 텐스토렌트, 세레브라스, 그록 및 한국의 리벨리온, 퓨리오사 등이 급성장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은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AI 연산을 실제로 수행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건설 중이다. 미국의 구글, 아마존, 애플, 메타(페이스북) 등이 데이터센터 사업을 활발하게 운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네이버도 데이터센터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AI 산업의 인프라에 해당하는 전력은 AI 연산이 증가하면서 수요도 급증했다. 데이터센터에서는 AI 연산을 수행하기 위한 반도체의 전원 공급뿐 아니라 대량의 서버에서 생성되는 열기를 식히기 위한 냉각에도 많은 전력이 소모됐다. 미국에서 신재생에너지업체인 뉴스케일파워를 비롯한 전력업체의 이익이 증가했고, 한국에서는 관련된 산업인변압기 제조업(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제룡전기)의 제품 수요가 증가했다.
2024년에는 2023년에 태동한 AI의 씨앗이 발아해 여러 싹을 틔우기 시작한 그린 슛(green shoot)의 해로 볼 수 있다. 2025년에는 싹이 자라나 다양한 색의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하는 골든 골(golden goal)의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야흐로 ‘AI를 이용한 무엇(애플리케이션)’인가가 나오는 해가 될 확률이 높다.
특히 미국에서는 실질적 애플리케이션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체화된 AI(Embodied AI)’로, 이는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AI 시스템을 의미한다. 로봇이나 드론 같은 하드웨어에 AI를 탑재해 인간처럼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학습하며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자율주행 차량이나 AI 기반 산업용 로봇이 대표적 예로, 이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설계되고 있다. 이런 기술은 물류, 제조, 농업, 의료 등 다양한 산업에서 적용률이 높으며, 2025년에는 이런 AI 애플리케이션이 더욱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세계적 기술에 도달한 회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AI에 대한 투자 없이는 미래도 없다. 다행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회사와 장비 회사,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대형 인터넷 기업이 많이 포진해 있다. 2025년에는 다양한 산업 간 융합을 통해 AI 분야에서도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잠시 쉰 배터리…기후 테크의 다음 행보는
2023년에 전기차와 배터리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이었다. 테슬라를 비롯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에는 증시뿐 아니라 스타트업, 벤처캐피털업계에도 뭉칫돈이 들어갔다. 하지만 높은 산 뒤에는 깊은 골이 기다리듯, 2023년 중반을 지나면서 전기차 수요 전망이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한 데 반해 배터리 산업은 공급망 전체에서 과잉 공급 문제에 직면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품 공급 제한 이슈와 이후 시작된 전기차 수요 과대 예측으로 인한 과잉 설비 투자에 기인한 문제였다. 경기침체 예상으로 인한 유가 안정세, 전력 시설 미비로 인한 충전설비 설치 제한과 전기차 안전문제가 부각되면서 관련 산업과 투자자는 2024년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기술 발전과 함께 산업의 저변이 넓어졌다. 배터리의 효율성과 안전성 강화, 새로운 소재의 개발, 폐배터리 혹은 불량 배터리 재사용 기술 발전, 전력 사용량과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로 인한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 증가 등은 침체된 2024년 배터리업계에서 희망의 불씨였다.
기후 기술 산업은 AI 산업에 비해 자본집약적이며, 장치 산업과 비슷한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이 탄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특히 기후 기술에 대한 투자가 얼어붙은 2024년과 같은 경제 환경이라면 더욱더 어려움이 가중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에 주목받은 유니콘 스타트업 중 하나로는 레드우드 머티리얼즈가 있다. 이 기업은 폐배터리 재활용을 전문으로 해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에서 사용된 자원을 재활용하는 혁신적 비즈니스모델을 통해 지속가능한 배터리 생산에 기여하고 있다.
2025년에도 2024년과 마찬가지로 탈탄소와 자원순환에 대한 세계적 노력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경제성만으로 볼 때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지난 100년간 꾸준히 발전해온 공급망을 갖춘 기존 화석연료에는 미치지 못한다. 탈탄소와 자원순환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며, 각국 정부에서는 기후 기술과 관련한 산업에 보조금을 주어 성장시키고 있다.
실제 현업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사람의 눈높이는 2022∽2023년과 비교할 때 많이 정상화됐다. 당시에는 모든 기후 기술 관련 산업이 금방이라도 개화되고 세상이 변할 것처럼 행동했던 사람들도 2024년을 거치면서 기왕 사용하던 기술과 산업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고 느끼던 시기였다.
기후 기술 분야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부 분야에서는 각국의 친환경 규제를 만족시키면서도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개발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 2∽3년 전의 빠른 속도가 아닌, 보다 현실화된 눈높이에 맞춰 유관 기술이 골고루 키맞추기를 하며 발전할 수 있는 속도로 개발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 테크, 어디까지 성장할까
2024년 바이오 시장은 다양한 혁신 기술과 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특히 비만, 당뇨, 그리고 AI 기술의 발전이 시장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했다. 비만과 당뇨는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에서 급증하는 만성질환으로 자리 잡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비만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당뇨병 환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비만은 심혈관계 질환, 고혈압, 제2형 당뇨병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관리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고 있다.
제약사와 바이오테크 기업은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신약 개발과 다양한 치료제를 내놓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eceptor agonists) 기반의 비만 치료제가 높은 효과를 보이면서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치료제는 체중 감량과 혈당 조절에서 강력한 효과와 함께 지방간, 치매, 심혈관 질환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연구 결과가 나와 ‘만능약’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AI 기술의 발전은 바이오 산업에도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특히 AI는 의료 분야에서 잠재력을 명확히 드러내 개인의 유전적 특성, 환경, 생활 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공하는 기술에 적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AI를 활용한 유전체 분석은 암 치료에서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제와 투약량을 제공해 치료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여 더 나은 치료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
AI 기술을 통해 원격진료와 디지털 헬스 케어 서비스와의 연계가 활발해지면서 정밀 의료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됐다. 이런 변화는 환자들이 더 쉽고 빠르게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의료비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AI 정밀 의료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통해 헬스 케어 시장을 혁신하고 있으며, 관련 기업은 새로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5년에도 바이오 테크 산업은 크게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세포와 유전자 치료는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기존에 치료하기 어렵던 질병에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 암, 희귀질환, 유전병 같은 난치성 질환에 대한 치료법이 급격히 발전하며 환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 가능성도 크다. CRISPR 기술의 상업적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더 많은 환자가 유전자 치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합성 생물학과 의료 AI는 신약 개발과 병원 시스템 전반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합성 생물학은 유전자 설계를 통해 맞춤형 약물을 생산하고,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신약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2024년에 시작된 AI 기반의 신약 탐색 기술은 2025년에도 가속화될 예정이며, 이는 제약 회사의 연구개발(R&D) 비용 절감과 효과적인 약물 개발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바이오 테크 산업의 성장도 눈에 띈다. 특히 의료 AI와 유전자 치료 분야에서 한국의 스타트업이 글로벌 투자자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의료 서비스와 유전자 기반 치료 기술이 국내 병원과 연구소에서 점차 상용화되면서 한국 바이오 테크 산업의 국제 경쟁력도 강화될 확률이 높다.
바이오 테크는 인류 건강을 위한 필수 분야로 자리매김하며, 앞으로도 신약 개발, 정밀 의학, 유전자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한 혁신과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글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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