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피즘·혼란한 정국…혁신과 도전으로 불확실성을 뛰어넘은 CEO들 [2024 올해의 CEO]

입력 2024-12-23 06:04   수정 2024-12-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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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2024 올해의 CEO]




트럼피즘, 내수 부진, 고환율에 이어 탄핵소추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한 해였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으로 석유화학·2차전지·철강산업의 성장세가 꺾였지만 인공지능(AI)·조선·방산·바이오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했다. 어려운 경영환경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든 최고경영자(CEO)들이 리더십을 발휘한 덕분이다.

기술혁신, 디지털전환, 기후변화, 경제질서 재편, 인구구조 변화 등 거대한 변화가 복합적으로 몰려오는 대전환기는 기업의 리더들에게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는 을사년 푸른 뱀띠 해를 앞두고 올해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리더십으로 대전환기를 이끈 25인의 CEO를 ‘2024 올해의 CEO’로 선정했다. 과감한 도전과 혁신으로 지속 성장 기반을 일군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편집자 주]







트럼프 신정부 출범에 따른 불확실성과 탄핵 정국 여파가 2024년 기업들을 덮쳤다. 2025년도 한국 경제도 ‘첩첩산중’이다. 성장동력이던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중국 반도체의 위협,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력 강화 등으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내외 주요 기관도 한국 경제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12개 국내외 주요 기관이 내놓은 내년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치는 1.9%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한국의 정치적 긴장으로 경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국가 신용도와 해외 투자자들의 원화 자산 선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과거의 정치적 혼란은 성장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 파장의 강도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연일 “한국의 경제 시스템은 굳건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에도 원·달러 환율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미래 불확실성 악재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내년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트럼프 리스크에 계엄 쇼크까지 겹치며 경영환경은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 하지만 위기 상황 속에는 반드시 기회가 공존한다.

‘올해의 CEO’들은 과거의 성공 요인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 마련에 집중하며 위기 속에서 더 큰 기회를 포착했다.

한경비즈니스는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탁월한 리더십으로 실적 개선과 미래 성장 토대를 마련한 최고의 CEO들을 뽑아 6가지 키워드로 분석했다. 미래 먹거리 발굴, 신사업 추진 성과, 경영 실적,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 위기 리더십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키워드① 인도 공략
정의선·김미섭



올해의 CEO들은 불안정한 대내외 경제 상황 속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인도에 주목했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인구 14억의 막강한 내수 잠재력을 가진 인도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올해 10월 인도 뭄바이 국립증권거래소(NSE)에서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IPO를 통해 약 190억 달러(26조4822억원)로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인도 IPO 사상 최대인 33억 달러(약 4조6000억원)를 조달했다.

현대차는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의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100만 대 생산체계를 구축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서 입지를 확고히 한다는 복안이다.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도 인도 시장을 핵심 성장 거점으로 낙점했다. 김 부회장은 그동안 미래에셋자산운용 해외법인 대표 등을 지내며 미래에셋증권의 글로벌 사업을 담당한 해외통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해외 확장 전략을 잘 이해하는 인물로 꼽힌다.

미래에셋증권은 2017년 국내 증권사 중 처음으로 인도 자본시장에 진출한데 이어 최근 인도 현지 증권사 쉐어칸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쉐어칸은 2000년에 설립돼 310만 명 이상의 고객, 120여 개 지점과 4400명 이상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보유하고 있는 현지 10위권 증권사다.

미래에셋증권이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따르면 올해 인도 쉐어칸 인수를 시작으로 글로벌 사업에서 연간 1000억원 이상 이익이 증가할 전망이다.




키워드② 신시장 개척
정태영·서정진·윤상현


현대카드는 금융업계 최초로 올해 10월 일본 3대 신용카드회사에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유니버스’를 수출해 주목받았다.

현대카드는 2015년 디지털 현대카드 전환 이후 2016년 알고리즘 전문조직을 신설하고 관련 투자를 이어가며 금융회사에서 테크기업으로 업의 전환을 추진해왔다. 테크기업 변신에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글로벌 리더십과 비즈니스 확장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정 부회장은 2015년부터 현대카드의 방향성을 테크기업으로 설정하고 매년 영업이익의 30%를 AI, 데이터 사이언스 등에 투자해 지난 9년간 1조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 업황이 악화한 가운데 디지털 투자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를 현대카드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만들었다.

K뷰티 글로벌 시장 선봉장인 한국콜마의 선전도 빼놓을 수 없다.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인 한국콜마는 국내 중소 화장품 업체들의 해외 진출 확대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인 아마존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한 조선미녀의 ‘맑은쌀선크림’도 한국콜마가 만들었다.

올해 6월 서울에서 아마존과 손잡고 ‘아마존 K뷰티 콘퍼런스 셀러데이’도 진행했다. 윤상현 콜마그룹 부회장은 올해 5월 콜마홀딩스의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글로벌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K뷰티 최대 수출 시장으로 떠오른 북미 시장 공략에 방점을 찍고 있다. 2023년 미국 뉴저지에 북미기술영업센터를 열었고, 세종공장의 노하우를 그대로 담은 미국 제2공장은 내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하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셀트리온그룹은 최근 CDMO 업체인 ‘셀트리온바이오솔루션스’를 출범했다. CDMO 사업을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키워 2027년 매출 10조원을 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셀트리온바이오솔루션스는 모기업 셀트리온이 지난 2002년 의약품위탁생산(CMO) 사업을 통해 축적한 다양한 비즈니스 추진 실적과 자체 제조 및 허가 등 의약품 사업 전 주기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사업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개발·제조 기업에서 더 나아가 CDMO를 한 단계 발전시킨 위탁연구개발생산(CRDMO)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키워드③ 리밸런싱
최태원·구광모


올해 재계 최대 경영 화두 중 하나는 사업 재편이었다. SK그룹은 올해 주력 사업인 배터리와 석유화학의 부진 속에서 최태원 회장 주도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리밸런싱 작업을 추진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했고 SK스페셜티 매각을 추진하는 등 조직 슬림화와 운영 효율화로 대표되는 리밸런싱을 통해 부채비율이 2023년 말 145%에서 올해 3분기 말 기준 128%로 줄었고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성자산)도 84조2000억원에서 76조2000억원 수준으로 감소하며 재무 개선 효과를 거뒀다.

리밸런싱 작업을 통해 재무건전성과 투자 여력을 확보해 AI·반도체와 같은 미래 성장 분야에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SK그룹의 리밸런싱은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날로 고조되는 가운데 연초부터 그룹 전반에서 빠르게 조직 슬림화와 운영 효율화 작업을 진행하며 선제적으로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래 준비에 시동을 거는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LG그룹도 올해 미래 사업 강화를 위한 리밸런싱에 주력했다. 구광모 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 역량을 모았다.

구 회장은 고객가치와 실용주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취임 이후 스마트폰 사업 철수 등 비핵심 사업을 과감히 결정하고 전장·배터리 사업 등 미래 사업에 전폭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LG는 2028년까지 ABC 등 미래 성장동력에 5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AI 사업 육성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LG AI연구원이 오픈소스 방식으로 공개한 ‘엑사원 3.5’는 미국, 중국 등의 글로벌 오픈소스 AI 모델과의 성능 비교 평가 결과 실제 사용성, 장문 처리 능력, 코딩, 수학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보였다. 내년에는 거대행동모델(LAM)에 기반한 AI 에이전트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키워드④ 비저너리
김승연·정기선


미래를 내다보고 비전을 제시한 CEO도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해 8차례에 걸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오션 등 핵심 계열사 현장 경영에 나섰다.

김 회장은 올해 11월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함께 한화오션 중앙연구원 시흥R&D캠퍼스를 방문해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격에 기여한다는 뜨거운 사명감을 갖고 연구에 임해주기 바란다”며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한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통으로 알려진 김 회장은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트럼프 2기 출범 대비 태세도 갖췄다. 최근 그룹 방산 사업의 주축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직도 맡아 그룹의 방산 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 주목받고 있다. 2023년 ‘오션 트랜스포메이션(Ocean Transformation)’에 이어 올해 ‘CES 2024’에서는 기조연설자로 나서 인류의 지속가능성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Xite Transformation)’을 제시했다.

미래 기술을 활용해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스마트 건설 현장을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정 수석부회장이 이끄는 HD현대는 바다에 이어 육상 인프라로 미래 비전을 확장, 육·해상을 아우르는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4 세계경제포럼’에도 참석해 글로벌 기업들과 탈탄소 협력방안도 논의했다.



키워드⑤ 재무 성과
존림·이선정·방경만


녹록지 않은 경영환경에서도 역대급 실적 성장을 이뤄낸 CEO들도 있다. 존림 대표가 이끄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1조원 규모의 빅딜 3건을 포함해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글로벌 제약사들과 수주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창립 이래 최초로 연간 수주 5조원을 돌파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최초로 연매출 4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2020년 12월 존림 대표 취임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수주역량을 끌어올렸고 그 결과 매년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내실 있는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CJ올리브영은 이선정 대표 체제에 힘입어 올해 연매출이 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대표는 1977년생으로 CJ그룹 내 최연소 CEO이자 ‘올해의 CEO’ 중 유일한 여성이다. CJ올리브영은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 3조5214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2조7971억원 대비 25.9% 증가했다.

올해는 지난해 매출 3조8612억원을 넘어 5조원대까지 넘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대표가 실적 호조를 이끌며 CJ올리브영의 그룹 내 위상도 커졌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올해 첫 현장 경영 장소로 CJ올리브영 용산 본사를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CJ올리브영은 다가올 위기에 미리 대비해 온리원(ONLYONE) 성과를 만든 사례”라고 평가했다.

KT&G는 올해 3분기 매출 1조6363억원, 영업이익 4157억원을 올렸다.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담배 매출이 크게 늘었다. 해외 궐련과 NGP(궐련형 전자담배), 건강기능식품 등 3개 핵심 사업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다.

KT&G는 방경만 사장 취임 이후 적극적인 주주가치 제고 노력에 힘입어 주가도 상승세다. 올해 11월 3분기 경영실적과 함께 2027년까지 4년간 약 3조7000억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한 뒤 KT&G 주가가 2017년 이후 7년 만에 12만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키워드⑥ 금융 호황
김용범·양종희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금융부문 CEO들의 약진도 돋보였다. ‘올해의 CEO’ 25명 중 금융부문에서만 10명이 배출됐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은 올해 내수 경기침체와 비상계엄·탄핵 사태 여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상 최대 실적을 예고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기조 속에 ‘예대마진’(예금과 대출금리 차에 따른 수익)을 확대한 영향이다.

2022년 ‘원 메리츠(One Meritz)’ 전환 이후 메리츠금융그룹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모범생으로 우뚝 섰다. 올해 6월 말 기준 메리츠금융의 3개년 연평균 ‘총주주수익률(TSR)’이 58%를 기록했다. 국내 금융지주사 평균보다 3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누적 당기순이익이 1조9835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은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M&A에도 뛰어들었다.

2014년 아이엠투자증권을 인수한 뒤 10년 만에 MG손해보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MG손해보험 인수는 메리츠금융의 전략적 성장과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김 부회장이 승부수를 던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KB금융지주는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 4조원대를 넘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21년 연간 순이익 4조원을 넘어선데 이어 3년 만에 5조원 돌파를 바라보고 있다. 홍콩 ELS 손실로 은행이 주춤한 사이 비은행 계열사들의 고른 실적이 그룹을 ‘리딩금융’ 자리에 올렸다.

3분기 호실적 발표 이후 비상계엄 사태 전까지 주가가 연초 대비 78% 오르며 금융 대장주로 우뚝섰다. 최근 밸류업 지수에도 신규 편입됐다.

올해 11월 취임 1주년을 맞이한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이 실적과 밸류업에서 리딩금융의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그가 취임한 지난해 11월 5만원대 초반이던 KB금융의 주가는 올해 3분기 실적과 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10월 하순이 되자 10만원을 뛰어넘기도 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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