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12월의 찬물'…환율 1450원 뚫렸다

입력 2024-12-19 17:57   수정 2024-12-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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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Fed)이 내년 금리 인하 속도를 대폭 늦출 것을 시사하자 원화 가치와 국내 증시가 급락했다. 환율은 달러당 1450원을 넘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코스피지수는 2% 가까이 하락했다. 탄핵 정국으로 국내 정치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경제 환경까지 악화하면서 경기 반등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19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날보다 16원40전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한 1451원90전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1450원 위에서 마감한 것은 2009년 3월 13일(1483원50전) 후 15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1500원 위까지 치솟은 환율이 내려오는 시기였다. 코스피지수는 전장보다 48.50포인트(1.95%) 내린 2435.93을 기록했다. 코스닥지수는 1.89% 하락했다.

이날 환율 급등과 증시 급락은 18일(현지시간) Fed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내년 점도표를 대폭 수정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Fed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4.25~4.50%로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내년 말 금리 전망은 연 3.4%에서 연 3.9%로 0.5%포인트 상향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FOMC 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금리 조정의 ‘폭’과 ‘시기’라는 표현을 통해 금리 추가 조정 속도를 늦추는 게 적절한 시점에 도달했거나 부근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예상보다 훨씬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경기 회복 수단으로 꼽힌 한국은행의 선제적 금리 인하 가능성도 크게 후퇴했다. 미국이 인하를 늦추는 상황에서 한국만 속도를 낼 경우 환율이 달러당 1500원에 육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FOMC 결정이) 국내 통화정책 완화에 상당 부분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초 환율 1500원 갈수도"금융위기급 쇼크에 외환당국 '총력전'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최근까지 달러당 1450원을 일종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왔다. 탄핵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되는 가운데, 외환당국도 급격한 환율 변동 움직임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19일 새벽 미국 중앙은행(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나오자 상황은 급변했다. Fed가 앞으로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전망에 원·달러 환율이 개장과 동시에 1450원 위로 치솟았다. 심리적 저항선은 ‘1500원’까지 밀리는 분위기다. 내년 초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환율이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면서 외환당국엔 비상이 걸렸다.
○"심리적 저항선 1500원 위협"
이날 외환시장에선 장 출발 전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FOMC 결과 발표 이후 간밤 뉴욕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이미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섰다. 오전 9시 환율은 전날 주간 종가보다 17원50전 오른 1453원으로 출발했다. 장 초반부터 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도 물량이 나와 환율은 이내 1449원 안팎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장 막판 원화 매도 물량이 나오면서 1451원90전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이날 종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3일 1483원50전 후 15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환율 움직임은 Fed의 통화정책 때문으로 분석됐다. Fed가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향후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밝혀 달러 강세를 촉발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원화 가치 약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가 늦춰지는 가운데, 국내에선 내수 부진과 수출 둔화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져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어서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20일까지 환율이 1460원 정도로 오를 수 있다”며 “연말 달러 가치가 소폭 내리더라도 내년 초에는 상승 흐름이 재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전략팀장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 예정된 내년 1월 전후 1500원 선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외환 수급 안정 대책 잇달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 외환·금융당국은 시장 안정 대책을 잇따라 쏟아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한 방향으로의 지나친 쏠림 현상은 향후 반대 방향으로 큰 폭의 반작용을 수반할 수 있다”며 “시장 참가자들의 차분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과도한 변동성에는 추가적 시장안정 조치를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행하겠다”고 했다.

외환 수급 안정 대책도 잇달아 나왔다. 기재부와 한은은 이날 국민연금과 체결한 외환스와프 계약 기간을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하고, 한도를 500억달러에서 650억달러로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국민연금이 해외 자산 매입을 위한 달러를 조달할 때 정부의 외환보유액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10%인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내년 말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당초 0%에서 상향한 조치인데, 오는 연말까지이던 기한을 1년 연장했다. 국민연금이 환헤지 비율을 높이면 달러 선물환 매도를 통해 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난다.

금융당국은 은행에 협조를 요청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업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과 정책금융기관(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에 기업의 외화 결제 및 대출 만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이 밖에 △외환 수급 개선 △연장시간대 외환거래 활성화 △세계국채지수(WGBI) 관련 거래인프라 개선 등 외환시장 안정 및 외화유동성 확보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무 부처인 기재부는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강진규/강현우/이광식 기자/뉴욕=박신영 특파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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