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의 부정적 효과 중 하나는 각종 음모론이 정치 무대로 흘러들어올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담화를 통해 계엄 선포 배경에 부정선거 음모론이 있음을 스스로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전산 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고, 지시를 받은 장군들은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어떻게 부정선거 증거를 찾을지 의논했다.
정치의 변방에 머물던 음모론이 주류로 진입하고 있는 시점이다.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터져 나온 광장의 환희가 가시기도 전에 한국 사회는 몇 개월이 걸릴지 모를 음모론과의 지루하고도 어려운 싸움에 빠져들었다.
윤 대통령은 음모론의 횡행을 막을 봉인도 풀어버렸다. 지난 늦여름부터 야당이 제기한 ‘계엄 음모론’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이 나와도 합리적인 반박이 먹혀들기 어렵게 됐다. “계엄 선포 예상도 음모론으로 치부하지 않았냐”는 말에 무너진다. 그 틈을 타고 ‘출산 직후 아기를 사흘간 굶겨라’는 유사 과학을 신봉하는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유튜버 김어준 씨를 국회로 불러들여 “계엄군이 주한미군을 사살해 북한과의 전쟁을 촉발하려 했다”는 말을 전 국민이 듣게 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갖가지 음모를 지어내 퍼뜨렸던 이들이 또 어떤 말로 여론을 호도하려 들지 모른다.
“주류 언론 대신 유튜버를 믿어라”는 말이 흔히 들리는 환경에서 음모론과 맞서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평생을 음모론과 미신 확산에 맞서 싸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삶은 귀감이 된다. 1996년 별세한 그는 과학적이면서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음모론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마지막 저작인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세이건은 다음과 같은 격언으로 시작했다. ‘흑암이 몰려들 때, 그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촛불 하나를 켜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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