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만났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 대선 이후 한국 측 주요 인사와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 등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 패싱’ 우려가 큰 상황에서 정 회장이 한국과 미국 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세계 관계자는 22일 “정 회장이 트럼프 당선인 소유의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리조트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함께 식사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물렀다. 정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과 식사하며 여러 주제에 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대화 내용과 관련해선 “특별히 언급할 만한 것은 없다”고 했다. 대화 시간은 10~15분가량이었으며, 어떤 주제가 대화 테이블에 올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대한민국은 저력 있는 나라로 빠른 정상화가 될 테니 믿고 기다려 달라”고 트럼프 측에 말했다고 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공식 채널을 통해 트럼프 당선인과 만난 게 아닌 만큼 자신이 한국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업계에선 정 회장이 과거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SNS에 올렸다가 곤욕을 치른 바 있어 더 조심스러운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회장은 내년 1월 20일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한국 정부가 사절단을 꾸린다면 그 일원으로 참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 간 가교 역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진 않은 것이다.
정 회장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외교당국과 산업계에선 정 회장 역할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과 친분을 쌓은 국내 주요 인사 중 현재로선 정 회장이 가장 돋보이기 때문이다. 경제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과 행정부 등 국내 인사 가운데 미 대선 이후 트럼프 당선인을 직접 만난 건 정 회장이 유일하다. 정 회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진 트럼프 주니어가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막후 실세’란 점에서 이런 분석에 더 힘이 실린다. 트럼프 당선인이 무명이던 JD 밴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올린 것도 트럼프 주니어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
정 회장은 마러라고리조트에 머무는 동안 트럼프 주니어 소개로 많은 정·재계 인사와 만났고, 이 가운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도 있었다고 밝혔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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