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트롯2' 6위, '현역가왕' 7위. 트로트 가수 별사랑이 두 번의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거둔 성적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어진 스핀오프 프로그램 출연에 60회에 달하는 전국투어 콘서트까지 쉼 없이 달린 그는 "이렇게 바쁜 적이 있었나 싶은 정도"라며 웃어 보였다.
경연 프로그램 외에 뮤지컬, 라디오 DJ까지 다양한 활동으로 꽉 채운 2024년이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경제신문 사옥에서 만난 별사랑은 "'미스트롯2'가 끝나고 나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도 한 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현역가왕'이 끝나고는 더 재밌게 즐긴 것 같다. 출산을 해보진 않았지만, 두 번째 출산 같은 느낌이랄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현역가왕' 출연 결정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별사랑은 "경연을 열흘 정도 남기고 마음을 정했다"고 털어놨다.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이유를 묻자 '미스트롯2' 때를 떠올리며 "단시간에 너무 많은 노래들을 카피하니까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화에 필요한 음악들을 계속 준비하는데 처음에는 공부하는 거고, 도움이 되는 거라 생각했는데 1, 2년 넘게 길어지니까 내가 어떤 가수인지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장고 끝에 다시금 오른 경연 무대에서 7위라는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에 의미를 두고 있는 별사랑이었다. "경쟁의식을 가진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고 운을 뗀 그는 "서로서로 위해주는 분위기였다.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면 순서를 바꿔주고, 목이 안 좋다고 하면 자기 목에 있는 손수건을 풀어서 묶어주기도 했다. '현역가왕'에는 선물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한계에 직면한 순간, 이를 돌파할 수 있게 해주는 주변인들의 힘을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다.
가수 린을 상대로 국악에 도전했던 '배 띄어라' 무대에서 별사랑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혼신의 노력을 쏟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평소 쓰지 않던 발성을 하면서 진짜 정년이처럼 노래를 못하는 상황이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목으로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땀에 다 젖을 정도로 쏟아냈다"고 전했다.
이어 "마스터분들이 '쟤 목 왜 저래'가 아니라 '아이고 애썼다'라는 반응이었다. 대성님은 '저 노래는 연습할 때도 한두 번 밖에 못 부를 것 같은 노래인데 머리로 계속 연습해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서 저렇게까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아티스트로서 이해해 주는 평가를 해주니까 졌지만 후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쟁 상대였던 린에 대해서도 "언니가 무대 올라가기 전에 '나는 너랑 함께 무대를 하게 돼 너무 즐겁고 재밌다. 결코 만만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너의 것을 해내는 친구니까 나도 열심히 할 거다. 그러니 너도 최선을 다해라'고 말해줬다. 그 말이 확 와닿았다. 서로 응원하고 각자 최선을 다했다"면서 "'현역가왕'은 무대를 하고 난 뒤에도 돌아보면서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올해 활동에 방점을 찍은 건 신곡 발매였다.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다른 가수의 곡을 불러야 하므로 '내 노래'에 대한 갈증이 컸을 터. 별사랑은 이달 초 신곡 '한 뼘 인생', '너뿐야'를 발매하며 2024년의 더 알차고 견고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됐다.
타이틀곡 '한 뼘 인생'은 짧디짧은 인생길을 걸어가는 현시대 부모님들의 되풀이되는 일상과 아린 가슴을 오롯이 표현한 곡이다. 묵직하고 진한 메시지를 덤덤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내는 별사랑의 목소리가 여운을 남긴다. 악기를 최소화하고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다. 별사랑은 "덜어낸 음악"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진짜 쉬지 않고 달려왔다. 손에 너무 많은 걸 쥐고 온 게 아닌가 싶더라. 남들이 수십년간 해오는 성장을 난 너무 단시간에 해 버린 거다. 나 스스로 너무 꽉 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상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덜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관악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2절에서도 악기를 더 넣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실 '한 뼘 인생'은 8년 전에 만난 곡이다. 듣자마자 꼭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20대였던 별사랑에게는 '한 뼘' 헐렁한 옷과 같은 노래였다. 곡을 부를 때면 아픈 엄마가 생각나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고. 별사랑은 "노래를 부르다가 계속 중단했다. 20대 중반의 애가 누군가에게 '우리 엄마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힘이 가득 들어가서 눈물이 계속 나는데 스스로 와닿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누군가한테 덤덤한 마음으로 이야기해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다음을 기약했고, 8년 뒤 다시 만난 '한 뼘 인생'은 비로소 별사랑의 이야기와 감정이 오롯이 담긴 곡으로 재탄생했다. 별사랑은 "예전에는 부모님의 마음만 담았다면 이제는 나의 마음과 인생도 담아서 부를 수 있게 됐다. 인생에 대한 투정, 서럽고 서글픈 마음은 내려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래라는 게 멜로디가 있는 이야기인데, 내가 무대 위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순간이 많았다. 내 노래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 뼘 인생'을 통해 많은 분을 덤덤하게 위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요즘도 '한 뼘 인생'을 부를 때 눈물이 나냐고 묻자 "울지 않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어 "노래에 완전히 빠져야 하는 순간이 있지만,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울어버리면 듣는 분들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덤덤하게 이야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나중에 40대가 된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한 뼘 인생'을 부를지 궁금하다. 그때는 경험과 연륜이 지금보다 더 쌓였을 테니까"라며 미소 지었다.
별사랑은 '한 뼘 인생'을 퇴근길 추천곡으로 꼽으며 "소소한 위로를 받으셨으면 한다. 울고 싶으면 울면서 비워내고 또 새로운 기운을 얻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곡 '너뿐야'는 출근길 추천곡이라면서 "어떤 분이 출근하면서 '너뿐야'를 듣고 사랑을 듬뿍 채웠다고 하더라"고 이유를 밝혔다.
지금은 이름 앞에 '트로트 가수'라는 명칭이 붙지만, 사실 별사랑은 고등학생 시절 밴드를 하며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다채로운 음악적 역량을 지녀 분명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되는 가수였다.
"제가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찾아가는 중이에요. 지금은 서정적이고, 잔잔한 곡을 부를 때 행복해요. 하지만 언젠가는 춤추는 별사랑도 볼 수 있을 거고, 별사랑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어쿠스틱 앨범을 내거나 재즈 음악도 해보고 싶고요.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있으니까 저 별사랑이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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