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수출 증가율 둔화, 내수 부진 장기화에 비상계엄 악재까지 겹치며 잠재성장률(2%)에도 못 미치는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최 부총리는 23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여러 가지 하방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내년 성장률 전망은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잠재성장률보다는 소폭 밑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첫 간담회에서 내년 성장률 저하를 공식화한 것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이달 말 발표되는 '2025 경제정책방향'에 담길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이미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9%로 낮춰잡았고, 비상계엄 여파로 인해 이마저도 위태롭다고 예상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투입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경제 규모의 증가율을 의미한다. 한 나라의 기초체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최 부총리는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해 내년 예산안을 조기 집행하는 등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내년 1월 1일부터 예산이 집행될 수 있도록 회계연도 개시 전 11조6000억원 배정을 추진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국고보조 사업은 국비를 우선 교부하는 등 올해(상반기 기준 25조원)보다 3조원 더 추가 집행할 것"이라며 "기금운용계획 변경, 정책금융, 공공기관·민간투자 등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내수 회복의 마중물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가능성은 열어뒀다. 최 부총리는 "민생이 어렵고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대해선 전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동의한다"면서도 "현재 내년 예산이 통과된 뒤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 1월 1일부터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년 들어 민생 상황이나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에 따라 적절한 대책을 계속 검토해 나가겠다"며 추경 편성 가능성을 남겨놨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추경 편성 필요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선 "감액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된 상황에서 (내년 1분기나 상반기가 아닌) 1년 전체로 봤을 때는 추경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게 한은 총재의 의견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가 바뀐 것이냐'는 질문에는 "건전재정이나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포기할 수 없는 재정의 큰 원칙"이라며 "정책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민생이나 불확실성에 대한 단기적 대응에 있어서 재정의 역할은 종전보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의 재정 정책이 경기 대응에) 부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과거에 잘못을 해서 바꾸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한 것에 대해선 "(상승폭의) 절반 정도는 경제·정치적 사건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강달러 때문으로 본다"며 "환율 급변동에 대해선 강력한 시장안정조치를 통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과 관계없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법안이 국회를 조속히 통과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반도체, 인공지능(AI) 관련 법안,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한 법안들은 올해 안에, 늦어도 내년 초에는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산업에 도움이 되고 대외 신인도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국회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등 대외 신인도에 역점을 두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 전략을 거의 다 마련했다"고 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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