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이 배당하지 못한 것은 2001년이 마지막이다. 국내에서 20년 이상 빠짐없이 배당한 기업이 30여 곳에 불과할 만큼 현대해상은 대표적인 주주친화 기업으로 꼽힌다. 한국거래소의 ‘코리아 밸류업 지수’ 105개 종목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회사는 작년엔 순이익의 26.6%에 해당하는 1618억원을 주주에게 배당했다.
실적이 악화해 배당을 중단하는 여타 기업과도 상황이 다르다. 현대해상은 올 들어 3분기까지 1조464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3분기 누적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이다.
배당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현대해상뿐만 아니다. 한화생명도 올 들어 3분기까지 5786억원의 순이익을 거뒀지만, 올해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한화손해보험도 비슷한 처지다.
현행 법령상 해약환급금준비금이 커지면 보험사의 배당가능이익은 줄어든다. 보험사의 신계약 판매가 증가하자 준비금 규모도 빠르게 불어났고, 현대해상 등 일부 회사에선 배당가능이익이 0원이 됐다.
뒤늦게 문제를 인지한 금융당국은 지난 10월 ‘해약환급금준비금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당국은 자본 건전성을 갖춘 보험사만 준비금을 덜 쌓는 방안을 제시했다. 올해는 지급여력(K-ICS) 비율 200% 이상인 보험사는 기존 준비금의 80%만 적립하고, K-ICS 비율이 150~200%인 회사는 90%를 쌓도록 했다.
규제가 완화됐지만 보험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제도 개선으로 수혜를 보는 보험사가 소수에 불과하고, 규제 완화 수준도 미미해서다. 예컨대 현대해상(169.7%)과 한화생명(162.8%)의 6월 말 K-ICS 비율은 200%를 한참 밑돈다.
결과적으로 보험사 회계 제도가 밸류업 정책을 역행하는 꼴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 때문에 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보험사가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모순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며 “당장 문제가 없는 다른 보험사도 몇 년 뒤엔 같은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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