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등대 같은 ‘명언 필사’ [고두현의 인생명언]

입력 2024-12-24 01:00   수정 2024-12-24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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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사막이나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건널 때 꼭 필요한 등대. 우리 인생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명언(名言)입니다. 널리 알려진 말 가운데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 오랜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간결하게 표현한 격언(格言)과 삶에 본보기가 될 만한 금언(金言)을 아우르는 지혜의 등불!

‘아르떼’에 연재 중인 ‘고두현의 인생명언’이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제목은 『명언 필사』(토트출판사)입니다. 명언 중에는 앞뒤 맥락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게 많은데, 그 배경과 속뜻을 하나씩 살피면서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는’ 필사의 묘미도 살렸습니다.

새해, 새출발, 새 결심을 다지는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많은 격려와 응원 바랍니다. 아래에 서문의 일부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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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의 앞뒤 맥락을 알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명언은 대부분 짧고 명료하다. “시간은 돈이다”처럼 금방 의미가 전해진다. 그러나 앞뒤 맥락을 알아야 뜻이 오롯하게 살아나는 명언도 많다. 이 책에 나오는 명언 중 “기회의 신에겐 앞머리밖에 없다”의 예를 보자. ‘시간과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앞머리만 무성하고 뒤쪽은 대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고대 그리스 시인 포세이디포스의 풍자시에 나온다.

“나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간이다/ (…) / 머리카락은 왜 얼굴 앞에 걸쳐 놓았지? 나를 만나는 사람이 쉽게 붙잡게 하려고./ 그런데 뒷머리는 왜 대머리인가?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지.” 기회는 바람같이 사라지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붙잡을 수 없다는 뜻이다.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는 과학적 지식과 직관적 체험을 모두 귀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어릴 때 우리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가 첼리스트 장한나에게 들려준 덕담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라”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는 일의 결과를 미리 재단하지 말고, 인생을 폭넓게 보라는 의미까지 담겨 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명언은 얼음보다 차갑고, 쇠망치보다 뜨거운 그의 일생을 깊이 파고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읽는 책이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쳐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 뒤 이 기막힌 명문장을 남겼다.

모든 이가 아는 명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도 앞뒤 맥락을 알아야 뜻이 통한다. 이는 기원전 400년께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말로써 진짜 뜻은 ‘우리 인생은 짧은데, 의술을 배우고 익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 당시 원문의 단어 테크네(techne, 기술)가 라틴어 아르스(ars)를 거쳐 영어 아트(art, 예술)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사다리에 오를 수 없다”는 미국 세일즈 거장 엘머 휠러의 명언에는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이처럼 우리 내면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명언들의 행간에서는 깊은 사색과 성찰의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 빛을 겸허하게 받아 적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어떻게 쓸 것인가-온몸으로 교감하는 ‘명언 필사’의 묘미

이 책은 우리나라 필사책의 효시로 사랑받는 ‘손으로 생각하기’ 시리즈 가운데 ‘명언으로 생각 근육을 키우자’는 콘셉트를 갖고 있다. 시리즈 첫 권 『마음필사』에서 강조했듯이, 필사란 잊고 있던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더듬는 일,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일이기도 하다. 손으로 쓰고 손으로 생각하는 동안 우리 삶이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고, 그 위에서 빛나는 서정과 사색의 나무가 자란다.

필사할 때의 첫 번째 지침은 천천히 쓰는 것이다. 베껴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옮겨 적는 것과 다르다. 연필심이나 펜촉이 종이에 글자를 그리는 그 시간의 결을 따라 문장 속에 감춰진 내밀한 의미가 우리 가슴에 전해진다. 행간에 숨은 뜻도 하나씩 드러난다. 여기에서 교감과 공감의 울림이 시작된다.

두 번째는 편안하게 쓰는 것이다. 가장 한가로운 자세로 쓰면 된다. 쉼표가 있으면 그 대목에서 쉬고, 말줄임표가 있으면 그 여백을 그대로 느껴보자. 그러다 보면 마음의 밭이랑 사이로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고 아침 샘물에 첫 세수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맑아질 것이다.

세 번째, 마음에 닿는 단어나 문장만 골라 써도 좋다. 누구에게나 영혼의 밑바닥을 건드리는 글귀가 있다. 어떤 이는 ‘ㅇ’ ‘ㅁ’ ‘ㄴ’을 좋아해서 초등학생의 그림 시간을 흉내 내듯 따라 그린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ㅇ’ ‘ㅁ’ ‘ㄴ’의 둥근 음소(音素)가 바로 ‘어머니’의 음운(音韻)과 같다는 것을.

네 번째,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쓴다. 은은하게 소리를 내면서 쓰는 글은 우리 몸을 완전한 공명체로 만들어준다. 아이들에게 문장을 읽어주면 상상력과 자신감, 표현력, 감성이 커지는 것처럼 성인도 기억력과 집중력이 좋아진다.

다섯 번째, 연필이나 만년필로 쓰는 게 좋다. 연필을 깎는 시간부터 마음은 고요하게 설레기 시작한다. 그 질감을 즐기며 한 자 한 자 따라 쓰는 과정 또한 사각사각 재미있다. 어느 날은 손가락에 착 감기는 만년필로도 써 본다. 종이 위에 흐르는 잉크처럼 생각의 물줄기가 따라 흐를지 모른다.

여섯 번째, 매일 조금씩 쓴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사색과 성찰의 시간으로 비워두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한층 깊어진 생각의 단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빈 페이지를 하나씩 채워간 사유의 나이테에서 우리 삶의 비밀스런 정원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조금씩 빈 곳을 채우다 보면 스스로 완성한 책 한 권을 갖게 되는 행복까지 누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위대한 인물들의 명언을 필사하면서 나만의 명언을 따로 써 보는 것도 좋다. 비슷하게 흉내를 내거나 전혀 엉뚱한 말을 생각해내도 상관없다. 그 속에서 내가 걸어온 발자취와 앞으로 나가야 할 이정표를 함께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두현 시인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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