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24일 15:3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마지막 카드로 꺼낸 '집중투표제'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구도를 또 한번 뒤흔들고 있다. 상법상 이번 주주총회에선 집중투표제 도입까진 가능하더라도 당장 이를 활용해 이사를 선임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최 회장 입장에선 일단 집중투표제만 도입시켜도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고려아연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혼란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 회장 마지막 카드, 상법상 불가능"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 연합은 다음달 23일 임시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도입과 동시에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을 추진하는 최 회장 측을 저지하기 위해 법원에 의안 상정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MBK 연합은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은 집중투표제가 도입된 다음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이번 임시 주총에서 동시에 추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상법 제382조2의 제1항에선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중투표의 방법으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는 다시 말해 집중투표 방법으로 이사 선임을 청구하려면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고려아연은 현재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을 배제하고 있다. 이 정관이 변경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 청구는 유효하지 않다는 게 MBK 연합 측 설명이다.
집중투표제 도입과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을 동시에 추진하는 걸 허용하는 건 주주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있다. 유미개발이 지난 10일 집중투표제 도입을 주주 제안한 사실을 인지한 고려아연 측은 집중투표제 통과를 가정해 이사 후보진을 추천했지만 다른 주주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해 이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날 열린 고려아연 이사회에서도 일부 이사진이 집중투표제 도입과 동시에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을 추진하는 게 상법상 가능하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사례와 동일한 판례는 물론 학계의 논의도 사실상 없어 MBK 연합이 가처분 신청을 내더라도 재판부가 가처분을 인용하기 부담스러워한다는 점을 최 회장 측이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집중투표제 통과 시 분쟁 장기화
집중투표제를 통한 이사 선임과 별개로 집중투표제의 도입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는 안건은 다음달 임시 주총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관 변경은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특별 결의 사안이긴 하지만 집중투표제 도입의 경우 '3%룰'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3%룰은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3%까지만 의결권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3%룰은 MBK 연합보다 최 회장 측에 더 유리하다. MBK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40.97%를 보유하고 있지만 영풍(25.42%), MBK의 특수목적회사(SPC) 한국기업투자홀딩스(7.82%), 장형진 고문(3.49%) 등이 나눠 가지고 있다. 이들의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각각 3%로 제한된다. 반면 지분을 가족들과 나눠 가지고 있는 최 회장 측은 3%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최 회장 및 특수관계인 지분만으로는 어렵지만 다른 기관투자가 등을 설득하면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는 게 산술적으로 가능하다.
집중투표제가 통과되면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 MBK 연합이 의결권 기준으로 과반에 가까운 46.7%의 지분을 확보했지만 집중투표제로 인해 당장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긴 어렵다. 개별 주주의 선택과 추가적인 주주제안으로 경우의 수가 다양하지만 사표(死票)가 없는 집중투표제 특성상 이사 선임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대체로 지분율에 따라 이사가 선임되는 경우가 많다. 최 회장 측 지분(17.5%)과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을 감안하면 14명의 신규 이사 선임한다면 MBK 연합 측 인사가 최 회장 측 인사보다 2명 가량 더 많이 선출될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현재 고려아연 이사진 13명 가운데 장형진 고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최 회장 측 인사라는 점이다. 민감한 안건마다 기권표를 던지는 김우주 기타비상무이사와 성용락 사외이사를 사실상 중립이라고 하더라도 '10(최 회장 측) 대 2(중립) 대 1(MBK 연합 측)' 구조다. MBK 연합이 14명의 이사 중 최 회장 측보다 2명 많은 8명을 차지하더라도 이사회 구도는 '16(최 회장 측) 대 2(중립) 대 9(MBK 연합 측)'가 된다. 집중투표제가 없다면 과반 지분 확보 시 이사회 과반 장악이 가능하지만 집중투표제가 통과되면 과반 확보에도 당장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기 어렵다.
집중투표제를 통해 선임하는 이사의 수를 정하는 권한이 고려아연 이사회에 있다는 점도 MBK 연합이 판세를 뒤엎기 어려운 요인 중 하나다. 예를 들어 MBK 연합이 다음 정기 주총에서 140명의 신규 이사 선임을 요구해 지분율에 따라 그 중 80명을 이사회에 집어넣어 현 이사회 구도를 뒤엎는 방안을 추진하더라도 고려아연 이사회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선임하는 이사의 수를 10명으로 제한하면 이 방법도 막힌다.
다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더라도 현재 고려아연 이사진의 임기가 끝나면 결국 고려아연 이사회는 MBK 연합 측이 과반을 장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13명의 고려아연 이사 중 5명은 내년 3월, 8명은 2026년 3월 임기가 끝난다. 이들의 임기가 모두 종료되는 시점인 2026년 3월엔 집중투표제 도입과 무관하게 이사회의 무게추는 MBK 연합 쪽으로 기울 것으로 전망된다.
MBK 연합이 최 회장이 마지막 카드로 내놓은 집중투표제를 "개인의 경영권을 연장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MBK 연합 관계자는 "최 회장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도입된 제도인 집중투표제를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악용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MBK 연합은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 전까지 고려아연의 경영상 혼란이 이어질 것을 우려해 이번 임시 주총에서 다른 기관투자가를 설득해 집중투표제 도입 또한 막아내겠다는 계획이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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