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명예위원장을 맡고 문인이자 초대 정무장관을 지낸 조경희 박사, 김영정 전 정무장관, <토지>의 박경리 작가를 비롯해 김후란, 전숙희, 김남조 시인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을 조직위원회에 모시고 ‘100년 가는’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여기저기 뛰어다녔는데 꿈처럼 실현됐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나를 만든 모든 환경이 ‘여성이라서’와 ‘여성과 함께’, ‘여성이니까’로 귀결된다. 1남6녀 가정에서 3대 독자 남동생을 둔 다섯째 딸이라는 태생부터 만만치가 않다. 가부장적 집안에서 딸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가감 없이 설명하고 대변할 수 있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으니 여성들과 함께, 여성을 위해 일하는 건 너무나 익숙하다.
그러나 아픔도 많았다. 여권 신장을 위한 토론회에서 “여성들도 직장생활을 할 때 남성과 똑같이 치열하게 임해야 한다”고 말하자 “박정숙 씨는 남성이 만들어놓은 여성상을 그대로 구현한 덕에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 그런 말을 하냐”라는 가시가 돋친 공박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선 여성계를 떠났다. 드라마 ‘대장금’에 중전마마로 출연해 한창 인기를 얻던 시절 스토킹으로 삶이 망가질 지경이었는데도 경찰조차 ‘인기 탓’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 재단에서 하는 스토킹 범죄 예방 사업의 귀중함도 다시 생각해 본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글로벌 국제기구에서 10년이 넘게 일했음에도 국내 국제기구를 이끄는 자리에 임명되니 ‘보은인사 대상자’라고 헐뜯는 말이 돌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처럼 우연인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가해자가 여성이었던 점도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아마 더 여성을 대변하고 싶어진 것 같다. 잘못된 젠더 관념이 남녀를 가르고, 20대 남녀가 정치적으로 이용돼 증오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을 보면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게 된다. 새해에는 상식이 통하는 조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오기를 다시 한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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