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한 번 못 가본 세 청년은 27세가 돼서야 그들만의 수학여행을 가기로 한다. “남들이 하는 거 다 해보는 여행”이 하고 싶어서다. 그들이 정한 곳은 햇살이 쏟아지는 제주. 햇빛과 파도, 따뜻한 공기까지 주변엔 온통 좋은 것뿐이지만 이들 누구도 기쁘지 않다. 난 여기 왜 왔을까.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은 지난 5월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대상을 포함해 세 개 부문 상을 받은 화제작이다. 전작 ‘십개월의 미래’(2021) 를 통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의 이야기로 주목받은 남궁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인생 최대의 난제를 앞에 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더욱 우울하고, 답답한 상황에 처한 인생들로 말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걸그룹 출신의 수민과 사랑 그리고 힙합 아이돌 출신의 태희는 식당에서 시비가 붙어 어느 남자를 폭행하고 여행 경비를 모두 합의금으로 써버린다. 그러고는 체류비를 모으고자 일손이 필요한 귤밭으로 나간다.
영화는 세 친구의 과거를 묘사한다. 어린 시절부터 걸그룹 활동으로 십수 년을 보낸 사랑과 수민의 삶은 상흔으로 가득하다. 수민은 먹은 것을 모두 토해내는 거식증으로, 사랑은 약이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극심한 우울증으로다. 태희도 마찬가지다. 그는 성공적이지 못한 아이돌 그룹에 있으면서 소속사 대표로부터 성접대와 빚 상환을 강요당하는 일상을 보내왔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서울을 떠나 먼 제주까지 왔지만, 제주의 눈부신 풍광은 이들이 안고 있는 상처뿐인 영광과 대비되는 신기루 같은 존재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비추는 바다가, 하늘이 아름다울수록 더 슬퍼지는 이유다.
그나마 이들이 생기를 찾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체류비를 벌기 위해 나선 귤밭이다. 사장에게 받은 일당을 한참 쳐다보던 수민은 말한다. “처음으로 받은 정산이야.” 세 친구의 사정을 알게 된 귤 농장 사장은 일당을 두 배로 쳐주며 일하지 말고 “놀 것!”을 명한다.
영화 ‘힘을 낼 시간’은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사는 우리 모두에게 외치는 구호 같은 것이다. 세 명의 친구는 주어진 하루 동안 최선을 다해 남들도 다 하는 것들을 해본다. 사력을 다해 웃고, 즐긴다. 영화는 말한다. ‘힘을 낼 시간’은 따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그것은 늘 그랬듯이 ‘지금’이라는 것을.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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