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속에서도 가성비 제품으로 성장을 거듭한 업체도 있다. 백화점과 마트의 구분을 없앤 복합쇼핑몰로 오프라인 유통의 희망을 보기도 했다. 올해 유통업계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 10월 오픈한 타임빌라스 수원점이 대표적이다. 전체 면적의 70%를 바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인기 있는 식음료 매장을 대거 늘리고, 팝업존도 확장했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백화점 바닥재를 쇼핑몰까지 끌고 나오는 식으로 경계를 무너뜨린 쇼핑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신세계도 8월 전국 이마트 점포 중 매출 1등인 죽전점을 쇼핑몰 형식의 스타필드마켓으로 바꿨다. 더현대서울을 통해 ‘쇼핑몰 강자’로 급부상한 현대백화점도 올해 부산에 백화점·아울렛·미술관 등을 결합한 신개념 쇼핑 공간 ‘커넥트현대’를 새롭게 선보였다. 소비자를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는 게 유통업체들의 지상과제가 된 상황에서 업태 간 구분이 무너지는 ‘빅 블러’가 수년간 대세가 될 전망이다.
상품 분야에선 고물가 여파로 초저가 경쟁이 불붙었다. 100~200원이라도 싼 상품에 소비자가 몰리는 ‘짠물소비’가 일상화됐다. 편의점들은 일반 상품보다 20~30% 저렴한 초저가 자체브랜드(PB) 라인업을 잇달아 강화했다. GS25에 따르면 올 1~11월 PB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9% 급증했다. 세븐일레븐(35.0%) CU(21.5%)도 마찬가지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이랜드 팩토리 아울렛 등 창고형 할인점과 다이소도 인기를 끌고 있다.
토종 e커머스 업체들이 흔들리는 사이 ‘상시 초저가’를 내세운 중국 커머스가 급부상했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알리익스프레스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968만 명을 기록했다. 1위인 쿠팡(3220만 명)과 격차가 크긴 하지만 11번가, G마켓 등을 제치고 국내 2위로 자리매김했다. 알리는 중국발(發) 저가 상품뿐 아니라 ‘수수료 제로’ 전략을 통해 한국산 상품까지 빨아들이는 만큼 국내에서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세계적인 K웨이브 열풍으로 국내 제(제조)·판(판매) 역학구도가 달라진 것도 큰 변화다. 기존엔 제조업체보다 유통업체가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런던베이글뮤지엄, 무신사 등 국내외 소비자가 선호하는 업체는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임대료를 깎아주면서까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앵커테넌트(핵심 매장)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유통업체들의 브랜드 유치전은 더 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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