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발달이 사람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이 됐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잘할 수 있는 카피라이팅과 디자인, 통·번역 등의 분야를 시작으로 채용 공고가 줄어드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고용 안정성이 흔들리는 직군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AI가 새로운 분야를 하나둘씩 정복하고 있어서다.
24일 채용 플랫폼 원티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콘텐츠 제작, 글쓰기, 통·번역 등 미디어 직군의 채용 공고는 2022년 1분기 대비 23%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전체 취업자는 2736만9000명에서 2883만3000명으로 5.3% 증가했다.
디자인 직군도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 3분기 채용 공고가 2022년 1분기보다 18%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생성형 AI 서비스 영향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2년 2분기 미드저니, 달리2, 스테이블 디퓨전 등 이미지 생성형 AI 서비스가 잇달아 출시됐다. 같은 해 4분기에는 AI 챗봇 ‘챗GPT’가 나왔다. 지난 6월 기준 미드저니 가입자(디스코드 서버 등록 기준)는 2040만 명에 달한다. 챗GPT는 국내 이용자(앱 기준)만 지난달 500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도 비슷한 추세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HBR)가 지난달 내놓은 ‘생성형 AI가 이미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가 등장한 1년 뒤 글쓰기 직무 관련 채용 공고가 30% 줄었다. 이미지 생성형 AI 도구도 취업시장에 영향을 줬다. 주요 이미지 생성형 AI가 나온 뒤 1년 만에 그래픽 디자인과 입체 영상(3D) 모델링 프리랜서 수요가 17% 감소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OECD 가입국 전체 25%의 근로자가 생성형 AI 서비스 영향권에 놓여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벤처캐피털(VC) 매쉬업벤처스의 이택경 대표는 “생성형 AI 시대에는 기술 개발, 마케팅, 경영전략 수립, 자료 분석까지 AI가 다 해준다”며 “이론적으로는 직원 3명만 있으면 유니콘 기업 운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달간 영상 등 50만개 제작…기업들 디자인 직군 구조조정
24일 업계에 따르면 가장 큰 피해를 본 직군은 마케팅과 디자인이다. 브이캣과 같은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자체적으로 고용한 마케터와 디자이너를 구조조정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파이온코퍼레이션 관계자들은 “고객사들이 인력 감축 효과부터 물어본다”며 “실제로 계약을 맺은 뒤 희망퇴직 인원을 늘린 곳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디자이너와 마케터를 다수 보유한 대기업들도 디자인과 마케팅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투자 비용 대비 효과가 사람을 쓸 때보다 뛰어나서다. LF, 신세계쇼핑, GS리테일 등은 마케터와 디자이너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솔루션 기업 스튜디오랩을 활용 중이다. 현대백화점, 올리브영 등은 스마트폰으로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을 전문가용 작품 사진으로 바꿔주는 ‘드랩아트’로 유명한 드랩과 거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기업이 관련 직군의 직원 수를 조절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 ‘일자리 창출 및 지역 경제 발전 2024:생성형 AI의 지형도’에 따르면 수년 안에 국내 일자리 중 38%가 AI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교육, 의료, 정보통신기술(ICT), 금융 등의 산업이 집중된 국가일수록 AI발(發) 일자리 잠식 속도가 빠르다는 게 OECD의 설명이다. ICT, 금융 산업이 발달한 룩셈부르크(64%)와 영국(63%)은 수년 내 AI로 대체될 수 있는 일자리 비중이 60%를 넘어섰다.
AI로 움직이는 로봇이 상용화하면 고용시장 파급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유해 환경과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종에선 AI 로봇이 필수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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