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통’ 은행장 전성시대

입력 2024-12-30 06:00   수정 2024-12-30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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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통’ 은행장 전성시대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중 신한을 제외한 3곳의 은행장이 전격 교체됐다. 바뀐 은행장들 면면을 보면 ‘영업의 달인’들이다. 연임된 정상혁 신한은행장도 30여 년간 영업 일선에서 잔뼈가 굵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 출범으로 공급망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등 대외 충격이 적잖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 격변까지 겹쳐 경제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전국 곳곳에 지점을 내고 예금을 끌어모으던 호시절은 이제 옛말이다. 영업을 잘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 타은행 고객을 모셔올 수 있는 영업 능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영업통 행장의 또 다른 강점은 뛰어난 리더십이다. 영업은 조직관리와 팀워크가 중요하다. 어려운 상황에도 성과를 이끌어내고 그다음 방향을 제시하고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면 현장은 달라진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장이 좋을 때는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다. 금리를 갖고 빠르게 판단을 내리며 경쟁하는데 결국 금리 조건이 바뀌면 손님들이 떠날 수밖에 없다”며 “어려울 때 관계를 통해 쌓은 영업은 질적으로 다른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1호 영업사원’ 이호성 하나은행장 후보

대표적인 영업통으로 이호성 하나은행장 후보가 꼽힌다. 그는 하나금융의 ‘1호 영업사원’으로 불린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지주 출범 이후 최초로 ‘우수 영업사원’ 제도를 만들어 하나카드 대표직을 수행 중이던 이 후보에게 상을 수여했다.

은행원 시절부터 영업의 길을 걷고 있는 이 후보는 하나카드 대표를 지낼 때도 항상 현장에 있었다. 고객을 만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땀의 결과는 숫자로 증명됐다. 이 후보 임기 2년 차를 맞은 하나카드는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44.7%나 증가한 1844억원을 기록했다.

이 후보의 영업력은 회사 내에서도 통한다. 그는 직원과의 스킨십에 열심이다. 복날 직접 직원들에게 수박을 나눠주는 행사를 열거나 점심 자리를 가지는 등 소통 기회를 자주 마련해 조직 내 화합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후보에 대한 함 회장의 신뢰도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함 회장이 하나은행장이던 시절 이 후보에게 중앙영업본부장·그룹장을 맡기며 중용했다. 하나카드 대표로 선임했을 땐 ‘경영관리 역량을 쌓게 하려는 것’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상고 출신에 영업력 하나로 은행장까지 오른 그는 ‘리틀 함영주’로 불린다. 대구 출신인 이 후보가 영남영업그룹장으로 그 지역 중소기업 최고경영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업 성과를 보인 것과 함 회장이 충청영업그룹에서 활약하며 영업통으로 불린 점도 닮아 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는 상품 출시로 이어지기도 했다. “해외여행 갈 때 필요한 카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를 듣고 해외여행 특화카드(트래블로그)를 내놔 대박을 쳤다. 트래블로그는 출시 29개월 만인 2024년 11월 가입자 수 700만 명을 넘었다. 올해 해외 체크카드 결제액(여신금융협회 2024년 11월 누적 기준)을 비교하면 4대 금융지주 카드사 중 하나카드가 2조2533억원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가장 젊은’ 정진완 우리은행장 후보

정진완 우리은행장 후보는 1968년생으로 4대 은행장(후보) 중 가장 젊다. 우리은행장 후보군 중에서도 가장 젊었고 부행장 19명 중에서도 막내에 가까웠다.

정 후보는 주로 기업금융 쪽에서 경력을 쌓았다. 본점영업부 본부장을 거쳐 현재는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을 맡고 있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상당히 높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이 전체 여신의 40%를 차지한다. 그는 중소기업 공급망 금융 지원을 위한 상생 플랫폼 ‘원비즈플라자’를 고도화하는 데 성공했다. 신규 공급사 탐색, 기업소모성자재(MRO) 연계 등 중소기업의 생산단가 절감 기능, 납품대금연동제 등 정부 정책 변화에 따른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원비즈플라자는 2022년 9월 출시 이후 1년 반 만인 2024년 2월 1만 회원사를 달성했고 12월 4만 회원사를 돌파했다.

정 후보는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다. 우리은행 내부 규정에 따르면 행장이 되려면 임원(부행장)에 오른 지 2년이 돼야 한다. 정 후보는 2023년 12월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임원에 오른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행장 후보에 올랐다. 그만큼 정 후보를 임 회장이 높이 사고 있다는 얘기다. 임 회장이 2004년 주영국대사관 참사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정 후보는 우리은행 런던지점에 근무하며 인연을 맺었다. 앞서 등용된 남기천 우리투자증권 대표이사도 임 회장과 런던 시절 인연이 닿았다.

정 후보는 1995년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정 후보의 최종 후보 등극으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행장 교차 선임 관행이 이어지게 됐다. 조병규 현 우리은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다.



‘비은행+영업’ 이환주 KB국민은행장 후보

이환주 KB국민은행장 후보는 1964년생으로 이재근 현 행장(1966년)보다 나이가 많다. 전임보다 나이가 많은 인물이 새 행장 후보로 낙점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내년 임기 반환점을 도는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의 신임이 그만큼 두텁다는 얘기다.

이 후보는 은행원 시절 강남 지역 지점장, 영업기획부장 등을 역임하며 영업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1년가량 지주에서 재무총괄(CFO)을 지내며 재무 쪽 식견도 겸비했다. 은행에서 지주로, 지주에서 다시 보험계열사 대표로 이동하며 폭넓은 경험도 쌓았다.

보험계열사의 괄목한 성과도 최종 후보 선정 배경이다. 이 후보는 KB라이프생명의 초대 수장이다. 전신인 KB생명보험 대표에 올라 푸르덴셜생명과의 통합을 진두지휘했다. 쉽지 않은 자리였지만 1년 만에 전산통합을 마무리하는 등 통합법인의 화학적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전산통합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보험사에서 신상품을 출시하기가 어려워 중요한 현안으로 꼽힌다. KB라이프생명은 올해 3분기 누적 2768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순이익(2562억원)을 넘어섰다.

양 회장과 이 후보는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주택은행 출신이며 보험계열사 대표에 올라 활약했다. 양 회장은 지주 전략담당 임원이던 2015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인수를 주도했고 KB손보 대표를 거쳐 KB금융 회장으로 등극했다.





‘홀로 연임 성공’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변은 없었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연임 시 1년의 추가 임기가 주어지는 은행권 관행과 달리 2년의 추가 임기를 부여받으며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신뢰를 재확인했다.

정 행장은 진 회장이 신한은행장이었던 시절 비서실장직을 수행하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후 경영기획그룹장(CFO)을 맡으며 최측근으로 자리 잡았다.

진 회장이 오랜 기간 일본을 주무대로 활동한 ‘국제통’이라면 정 행장은 국내 영업 현장에 잔뼈가 굵다. 영업통답게 정 행장은 1년 차인 2023년 말 영업 중심으로 조직을 재설계했다. 각 권역별 맞춤 영업을 펼치기 위해 영업그룹을 영업추진1그룹, 영업추진2그룹, 영업추진3그룹, 영업추진4그룹으로 나눴다. 자산관리(WM)그룹은 영업추진4그룹으로 편제해 WM의 영업력도 강화했다. ‘리테일 중심 영업점’(복잡업무 처리 영업점)을 신규 도입하고 ‘고객 중심 영업점’(단순업무 비중 높은 영업점)을 확대하며 고객을 끌어들였다.

취임 2년 차인 올해 신한은행은 시중은행 1위(3분기 누적 순이익 기준)를 달리고 있다. 4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3조원대 당기순이익(3조1028억원)을 올려 연간 ‘리딩뱅크’ 타이틀을 차지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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