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무엇이 더 있는가. 국립무용단이 지난 19~25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펼쳐낸 우리 춤 모둠 ‘향연’은 이런 호기심을 강하게 불러온 공연이었다. 질문은 우리 것을 더 알고 싶다는 지적 욕구를 넘어선다. 질문의 밑바닥에는 우리 것을 통해 느껴보지 못한 자부심이 더 있으리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 ‘허리가 좀 아프네’ 하면서 자리를 한 번 고쳐 앉았을 뿐인데 순식간에 100분이 흘러가 버렸다.
향연은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공연이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2015년 초연 이후 ‘한국춤 신드롬’을 불러왔을 만큼 세간의 화제였으나 최근 6년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향연은 11개 전통춤을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로 나눠서 배치했다. 연회의 서막은 흑백의 정갈한 차림으로 끊길 듯 이어가는 궁중무용이 열었다. 적막 속의 단순한 동작에서 왕조의 위엄이 경건하게 드러났다. 종묘제례 가운데 비단 예물을 올리는 의식(전폐)에서 연주되는 노래와 춤이었다.
여름은 종교제례무용이었다. ‘우리에게 무엇이 더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떠오르기 시작한 즈음이다. 궁중무용을 지나 바라춤, 승무, 진쇠춤 등 종교무용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기나긴 역사 동안 한국인의 정신세계 깊숙이 아로새겨진 근원을 더듬어보게 했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무용수들은 자꾸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바닥까지 진동하는 바라소리와 징소리와 북소리와 창소리 또한 우리 안의 어딘가에 놓여 있던 공동체의 감정을 깨우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감이 들었다. 우리 의식 세계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어둡고 볼썽사나울 것 같다는 걱정에 감히 따져보고 열어보지 못한 우리의 잠재 의식 세계가 촘촘한 고민과 다채로운 사상으로 채워져 있을 것 같은 희망이었다.
일상을 억누르던 공허함이 메워졌으니 이제 마음 놓고 즐기면 된다. 마침 가을은 신명이 났다. 선비춤은 왠지 깍쟁이 같은 흥을, 장구춤은 단단하면서도 소박한 흥을, 소고춤은 격정적이면서 천진한 흥을 불러일으켰다.
대단원의 겨울은 태평성대를 기다리며 봄과 희망을 축원하는 신태평무였다. 각각 푸른색과 붉은색의 궁중 예복을 갖춰 입은 50여 명의 남녀 무용수는 절도 있고 현대적으로 국가무형유산 ‘태평무’를 구현했다.
향연의 무한 매력은 복장과 무대로 완성된다. 담담한 것 같으면서도 화려하고, 한적한 것 같으면서도 격동하는 복장과 무대는 지금까지 이어 내려온 한국 무용의 특징을 고스란히 떠올려준다. 오랜 시간 전승되면서 생겨난 여유 그리고 혹여 만에 하나 절연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씨줄과 날줄로 엮인 이중성이다. 언제고 다시 기회가 될 때마다 향연이 다시 무대에 오르길 기원한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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