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최근 연 내년 경영전략회의의 최대 화두는 ‘고환율’이다. 급격한 원·달러 환율 상승의 여파로 수익성에 비상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삼성과 LG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핵심 부품을 주로 해외에서 달러로 구입한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미국 퀄컴에서 들여오는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가 대표적이다. MX사업부의 연간 AP 구매액은 11조7320억원(2023년 기준)에 이른다. 환율이 10% 오르면 1조원이 넘는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글로벌 생산·판매 구도가 바뀌면서 이런 공식은 옛말이 됐다. 한국 정보기술(IT) 기업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하면서 해외에서 생산해 현지 통화로 판매하는 게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달러로 건네는 핵심 부품의 조달비용만 늘어날 뿐 수익성 확대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3월 발간한 ‘환율 변동이 국내 제조업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 하락한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수출 전략이 ‘기술 경쟁’으로 변하면서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매출 효과가 사라졌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환율 상승은 원화로 환산한 해외 투자비 부담도 늘린다. 미국에 수백억달러를 들여 공장 건설에 나선 반도체, 배터리 기업이 ‘속도 조절’을 고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공도 환율이 오르면 타격받는 대표 업종이다. 리스비와 유류비 등을 달러로 지출하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 말 기준으로 33억달러에 달하는 순외화부채를 안고 있는 대한항공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330억원의 외화평가손실을 본다. 유지류 등 원재료 가격 상승에 더해 원·달러 환율까지 급등해 식품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대부분 식자재를 수입하는 국내 식품업계 생산 원가에서 원재료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0%에 이른다.
통상 기업은 원가 부담이 커지면 제품 가격을 올려 대응하지만 요즘엔 쉽지 않다. 해외 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소비 시장마저 위축돼서다. 전자업체 관계자는 “지금 판매가를 올리는 건 자살골을 넣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기업마다 고육지책으로 택하는 게 고정비 절감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해외 출장이 많은 기업은 필수 인력만 보내는 식으로 비용 절감에 나섰다.
황정수/하헌형/성상훈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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