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아우르는 미식의 카테고리 안에서 요리와 음료(또는 주류)를 곁들이는 ‘페어링’.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대만은 즐거운 놀이터와 다름없다. 기후가 온화한 특성에 맞춰 자체적으로 위스키를 생산하고, ‘차’에 대한 깊은 역사를 상품화하는 감각 또한 놀랍다. 초가을 다녀온 대만의 레스토랑 ‘유엔 지(Yuen Ji)’는 대만 타이중이란 도시에 있는 강력한 루키다. 올해 4월 20일 문을 열고, 4개월 만에 ‘2024 미쉐린 가이드’에서 1스타 별을 받았다. 미쉐린 별을 딴 건 어느 정도 당연한 결과였다. 30여 년의 경력으로 타이베이에서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 2스타 별을 거머쥔 린주웨이 셰프와 총지배인 차이밍룬이 주방과 홀을 진두지휘하기 때문이다. 린주웨이 셰프는 대만 북부 산간 진산에서 자랐는데, 대만의 계절 식재료에 대한 정보와 경험치가 높은 기술자다. 요리에 화려한 옷을 입히는 대신 본질적인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확한 조리법과 향신료 등을 사용한다. 2년여에 걸친 프로젝트로 문을 연 유엔 지는 새로운 세대를 매혹할 현대적인 대만 요리의 연구개발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대만 요리는 400년의 역사 속에 다양한 융합과 해석을 통해 독특한 요리 스타일을 다듬어 왔다. 4세기 동안 광둥성과 푸젠성에서 온 사람들은 각자의 새로운 터전으로 이동하면서 각 지역의 독특한 요리 방법을 통합하고 특별한 음식 문화를 형성했다. 대만 요리는 원래 광둥성, 푸젠성, 일본의 진수를 융합한 것으로 일본 식민지 시절에는 연회에 일본 요리의 정교함을 더한 요리를 선보였다. 중화민국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요리로 발전해 왔다. 풍요로운 해산물과 채소 등을 통해 다문화 지역으로서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풍요로운 식재료의 향연이었던 코스와 그에 기가 막히게 어울렸던 차 페어링을 조금 소개해 본다. 멋진 원형 디시에 나눠 나온 대만의 명물 ‘쿠에이 팅 치킨 냉채’와 훈제한 오리, 구근 식물인 유리네와 콩, 튀긴 두부와 절인 계란, 돼지 심장 등이 한 입 거리로 코스의 첫 순서를 담당했다. 곁들이는 차로는 대만의 2014년산 ‘비란춘’ 녹차가 제공됐다.
다양한 생선과 채소 요리가 등장했지만 역시나 중국과 대만에서 식사할 때 가장 크게 감동하는 것은 진하게 우려낸 치킨 수프다. 여기에 보이차와 생선 대가리를 넣어 푹 고아 그 깊이를 더했는데 한 스푼씩 떠먹을 때마다 몸이 따스해졌다. 그릇이 바닥을 보일 즈음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이마에 맺힐 만큼 놀라운 맛이 느껴졌다. 여기에는 운난 흑차를 곁들여주는 센스가 돋보였다.
생선 요리 또한 중식에서 빼놓을 수 없었다. 브레이징한 농어는 먹음직스러운 쌀밥과 함께 상큼하게 절여 채 썬 죽순을 곁들이니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입안에 부드럽게 채워지는 식감이 무척 좋았다. 여기에는 운남에서 온 ‘란캉구임’ 백차를 깨끗하게 곁들였다.
그 후엔 진한 귤피 보이차와 함께 우리 입맛에도 익숙한 돼지고기 조림을 꽃빵에 싸서 먹기도 하고 개운하고 칼칼한 마파두부와 흰쌀밥을 우아한 우롱차와 함께 즐겼다.
연이어 나온 네 가지 약초와 참마, 삼겹살과 돼지 부속을 넣어 고아 낸 뽀얀 수프로 기력을 보강했다. 여기에는 그토록 아름다운 향이 매력적인 동방미인을 페어링하는 위트란! 유엔 지에서 만난 산해진미도 인상 깊었지만 가장 마지막에 나온 아몬드 수프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여느 평이한 아몬드 수프에 오너의 취향에 따라 제비집을 넣어 준비한 호방한 접대에 흠칫 놀랄 수밖에.
와인 한 방울 없이 즐긴 이 코스에서 세밀한 만족감을 끌어낸 데는 지역별 메뉴에 따라 페어링된 차의 역할이 컸다. 대만 향토 요리, 그들의 추억 속 아련하게 남아있는 맛을 세련된 플레이팅과 식기들 그리고 전문적인 티 페어링을 곁들여 가치를 끌어올린 구성이다. 대만에서는 늘 다이닝과 티 페어링에 대한 새로운 감동과 더 알고 싶은 욕구가 끓어오르는데 연륜이 깊은 셰프의 요리가 더해지니 그저 신선이 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운남의 6대 다산 천년 고수의 ‘진다마생 보이차’는 그 어디에서도 맛보기 힘든 유엔 지의 시그니처로 기억될 것 같다. ‘차’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 패션과 고향의 옛 정취가 담긴 레스토랑의 공간은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공간 디자이너 릴리안 우가 기획했다. 천장의 실크, 전통 블루 염색 기술로 등잔불을, 가족 간 긴밀한 연결을 상징하는 삼끈을 많이 사용해 아름다운 병풍을 만들어 구성했다. 공간과 요리, 차와 문화를 한데 어우르는 아름다운 경험이 궁금하다면 대만 타이중으로 가보시길.
■ 차 컬렉터 가문이 운영…테이블마다 티소믈리에가 우려줘
‘유엔 지(Yuen Ji)’는 자연, 빛, 차 문화를 조화롭게 담아낸 현대식 연회장으로 동양의 미학과 서양의 귀족적 개념을 아름답게 결합하고 있다. 총 2층의 룸 식사 공간과 128석의 좌석을 갖추고 있고, 여섯 가지 요리를 선택할 수 있는 코스 메뉴로 진행된다.
이 레스토랑의 모기업은 포유엔지그룹이다. 선대로부터 이어져 온 세계적으로 유명한 차 컬렉터 가문이 운영한다. 회장인 아버지가 직접 블렌딩한 차를 아들이 상품화하는 것은 물론 차 테마파크, 숙박시설을 건설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유엔 지에서는 차 소믈리에가 테이블마다 배정돼 식사와 어울리는 차를 눈앞에서 우려낸다. 대만의 지리 정보와 차의 이름, 특징을 안내하는 서비스를 한다.
타이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시토우 숲에서 포유엔지가 운영하는 통나무 소재의 료칸 숙박 시설 ‘코야 시샨(KOYA XISHAN)’도 함께 방문할 가치가 있다. 여섯 개 룸으로만 운영해 다소 폐쇄적이지만 숲 트래킹 프로그램, 다실에서 진행하는 차 시음 프로그램은 꽤 의미 있다. 차에 진심인 모기업에서 시작된 만큼 유엔 지는 대만 고향 요리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차 한 잔으로 요리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집의 맛’을 이어가기를 원하고 있다.
타이중=김혜준 푸드콘텐츠디렉터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