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욕망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돈의 가면을 쓸 때 종종 잔혹해진다. 이성을 무너뜨리고 폭력을 수반할 때가 많아서다.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흥행작 ‘오징어 게임’은 돈과 존엄을 맞바꾸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을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놀이로 풀어낸다. 26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2’ 역시 변한 건 없다. 시청하는 내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돈과 빚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돈으로 쌓고 피로 얼룩진 계급 피라미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 456번(성기훈·이정재 분)이 돈보다 귀한 ‘목숨값’을 받으러 게임에 돌아온다. 456번이 낸 균열은 돈의 먹이사슬을 끊는 시발점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생채기에 그칠 것인가.
성기훈은 게임장에 돌아가려고 딱지맨을 뒤쫓는다. 새로운 참가자를 물색하는 딱지맨은 태평스럽게 양손에 빵과 복권을 잔뜩 들고 공원 노숙자를 찾는다. 그는 이들에게 빵으로 허기를 달랠지, 실낱같은 가능성을 안고 복권을 긁을지 선택을 종용한다. 빵을 바닥에 버리고 짓밟는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는 딱지맨은 “우리는 희망을 줬을 뿐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선택을 한 책임은 욕심 많고 돈은 없는 너희에게 있다”는 게임 주최 측의 계급논리를 상기시킨다.
성기훈과 조우한 딱지맨은 목숨을 건 ‘러시안룰렛’ 게임으로 성기훈에게도 이 논리를 들이민다. 시즌1이었다면 빵 대신 복권을 쥐었을 성기훈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게임에서 승리한다. 달라진 성기훈의 모습은 이후의 전개를 짐작하게 한다. 게임을 멈추기 위해 무기를 사거나 딱지맨을 뒤쫓는 일 외에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은 그가 “함부로 쓸 수 없는 사람들의 목숨값”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도 돈보다 앞서는 가치가 있다는, 게임 주최 측과 맞서는 신념을 보여준다.
게임에 돌아온 ‘고인물’ 456번에 맞서는 ‘관리자’ 001번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역할을 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456번의 지식을 쓸모없이 만드는가 하면, 그의 반대편에 서서 좌절시키고 때론 든든한 조력자로 힘을 준다. 001번의 교묘한 공작은 게임을 중단시켜 모두를 살리겠다는 456번의 의지를 잃게 하고 ‘대의를 위해 작은 목숨은 희생할 수 있다’는 신념에 반하는 생각까지 불어넣는다.
임시완, 강하늘, 이진욱, 박성훈, 양동근, 강애심, 조유리 등 호화 출연진의 연기도 볼만하다. 스타급 배우에게 각자의 서사를 입히느라 지루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연출이 조화롭다. 특히 트랜스젠더 120번으로 이목을 끈 박성훈은 ‘신 스틸러’다. 다만 ‘약물 중독 래퍼’ 230번으로 메인 빌런 역할을 하는 T.O.P(본명 최승현)의 과한 설정은 이질적이라 아쉽다. 워낙 스토리가 넓고 등장인물이 많은 탓에 황준호(위하준 분)의 존재감이 증발해버렸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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