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초 갑자기 추진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좌표를 잃고 있다. 탄핵 국면에서 대선 시계가 빨라지자 정치권에서 온갖 국장 살리기 공약이 난무할 조짐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상장기업 주가가 중장기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본질적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으로 혁신기업이 한국 증시에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풍토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백화점(주식시장)에 상품(상장기업)이 많아졌다는 건 소비자에겐 이로운 일이다. 한국 백화점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존 제품 하자는 방치한 채 신제품 유치에만 몰두하고 있어서다. 진열대에 불량품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데 치우는 관리자가 없다. 전환사채(CB) 공장, 정치 테마주 등 온갖 작전 세력이 한국 증시에서만 판치는 이유다. 현명한 소비자는 명품이 가득한 미국 백화점으로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제품이 불량품으로 바뀌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언제인가부터 코스닥 신규 상장이 새로운 성장 스토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성장사다리의 모순을 다들 절감하고 있다. IPO가 혁신 창업가의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주는 게 아니고, 대박을 터뜨려 건물주나 되려는 욕심을 부추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늦게 거래소도 상장폐지를 확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방법이 틀렸다. 2009년 도입된 상장폐지 실질심사는 효율성이 떨어질뿐더러 행정력을 낭비한다. 문제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코넥스시장으로 강등시키면 된다. 유명무실해진 코넥스를 패자부활 시장으로 리모델링하면 된다. 성장사다리를 한 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활용하는 게 절실하다.
갑자기 튀어나온 밸류업지수, 밸류업 펀드 같은 땜빵식 처방으로는 K증시 탈출 행렬을 막을 수 없다. 상장 이후 투자자와 성장 과실을 공유하는 기업을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구조개혁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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