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혁신의 미래, 예측할 수 있을까

입력 2024-12-26 17:32   수정 2024-12-27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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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그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단어가 있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4차 산업혁명이 그런 사례다. 하천을 파헤쳐 보를 만드는 게 녹색성장이었을까? 창조경제는 더했다. 그 시절, 정보통신 부처에서 최고위직에 재직 중인 친구와 소주를 먹으며 물었더니 “솔직히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드신 분은 그걸 이해하셨을까? 다들 표와 지지에 도움이 될, 전임자와 차별화한 캠페인을 한 게 아닐까?

사전에서 ‘산업혁명’은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에서 벌어진 기술 혁신과 새로운 제조 공정으로의 전환, 그로 인해 일어난 사회, 경제의 큰 변화’로 설명한다. 그러면 ‘산업혁명’이라는 간지나는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놀랍게도 산업혁명이 끝나고 66년이 지난 1884년 출간된 글에서 경제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저명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의 백부)가 이름 붙이신 거다. 혼란과 질주의 시기가 ‘끝나고 나서 차분하게 돌아보니 그렇더라’는 말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은? 2015년, 세계경제포럼 창시자 클라우스 슈바프가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혁명이 지속될 것이다’고 주장, 아니 예언하신 개념이다. 2016년 1월의 다보스포럼 주제로 채택하면서 그 이름이 널리 퍼졌다. 찬찬한 과거 분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은 물론이고 미래예측형으로 사용하는 만용을 슈바프 선생은 발휘하셨다. 어찌 됐든 덕분에 다보스포럼이 흥행했고 책도 많이 팔렸고, 강사료도 엄청나게 벌었으니 마케팅 혁명에는 성공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예측, 맞기는 한 걸까? 변화를 주도하는 기반기술을 축으로 1차, 2차, 3차로 나누는 것도 작위적이고 혁명이 파도처럼 4차, 5차가 계속된다는 주장도 그렇다.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시야를 ‘산업’에만 국한한다는 문제가 있다. 지금의 핵심 기술은 산업을 넘어 소통 방법, 놀이와 데이트, 학교와 학습, 정치와 투표, 학자들의 연구 방식을 포함해 삶의 모든 것을 바꿨고 또 바꿔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는 한국에서만 요란하고 해외에서는 ‘디지털전환’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산업혁명은 물론이고 과학혁명도 동력은 혁신 당사자 사이의 소통 양과 속도에 달려 있다. 찰스 다윈은 평생 2000명과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지금까지 수집한 편지가 1만4500통이다. 매일 한 통 이상을 쓴 편지 중독자인 다윈은 동료 학자들과 편지로 토론하며 이론을 다듬어갔던 거다. 과학혁명의 배경에는 학자들의 편지공화국(다중 연구공동체)이 존재했다. 산업혁명의 동력도 그러했다. 지금은 어떨까?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번진 2020년 1월, 온라인 연구공동체 아카이브에 즉시 논문 1편이 올라왔고 그해 10월까지 8만4000편의 관련 논문이 올라왔다. 다윈이 평생 쓴 편지의 6배다. 그런 지식 공유를 기반으로 엄청난 속도로 백신이 개발돼 우리를 구했다.

모든 영역에서 지구 전체의 두뇌가 연결, 교류, 융합하면서 우발적인 혁신이 터져 나오는데 누가 미래에 대해 감히 단언할 수 있겠나! 자기 전공 기술 분야의 10년간 전개 방향에 대한 로드맵 작업을 요청받은 교수가 아무리 고민해도 3년 이후는 머리를 긁적이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미래는 알 수 없는 영역이라고 아무것도 안 하면 진짜 망한다. 잘 모르겠으면 가능한 범주를 펼쳐놓고 폭넓고 광범위하게 보험성 투자라도 하는 게 현대 정부의 역할이다. 괜히 아는 척하며 ‘저 산이다’라고 외치지는 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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