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간다. 상급 단체인 금융노조가 아니라 은행이 주도하는 파업은 1961년 기업은행 창립 후 처음이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3고(高) 여파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고사 위기에 내몰린 가운데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목적으로 설립된 국책은행 노조가 ‘밥그릇 지키기’ 파업에 몰두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은행 노조는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보다 30% 이상 적은 ‘임금 차별’을 파업 이유로 내걸었다. 시중은행과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턱없이 낮은 보상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집계 결과 국민(1억1910만원) 신한(1억956만원) 하나(1억1628만원) 우리(1억979만원) 등 4대 시중은행의 작년 말 기준 평균 연봉은 1억1368만원으로 기업은행(8528만원)보다 33.3%(2840만원) 많다.
하지만 시중은행과 달리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은 사측이 마음대로 임금 인상을 결정할 수 없는 구조다. 공공기관으로 분류된 기업은행은 기획재정부의 ‘공무원 임금 가이드라인’이 적용된다. 임금과 복리후생비 등 인건비로 쓸 수 있는 연간 총액을 미리 정해두고 그 범위에서만 인건비를 지출하는 구조(총인건비 제도)다. 기업은행은 올해 임단협에서 노조가 요구한 임금 인상률(2.8%)이 공무원 가이드라인(2.5%)을 웃도는 만큼 수용이 어렵다고 했다. 이익배분제와 보상 휴가 전액 현금 지급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은행 노조도 지난 24일 내놓은 파업 관련 자료를 통해 “기업은행은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승인 없이 사측 권한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거의 없다”며 임금 문제를 노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총파업은 정부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권에서는 최근 치러진 기업은행 노조 집행부 선거에서 당선된 류장희 위원장이 무리한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총파업 카드를 꺼냈다고 보고 있다. 류 위원장은 특별성과급과 우리사주, 보상 휴가(시간 외 수당)를 금액으로 환산해 “1600만원의 현금성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업은행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노조 요구는 공공기관 해제 없이는 애초부터 수용이 불가능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업은행 노조의 파업에 “시중은행처럼 치열한 경쟁은 거부한 채 임금만 높여달라는 것 아니냐”며 금융권 안팎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경제계에서도 원·달러 환율이 1460원을 돌파하는 등 ‘환율 쇼크’ 여파로 수출입 중소기업의 경영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소기업 정책자금 지원 은행인 기업은행이 파업을 벌이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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