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사진)은 26일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이 단독으로 헌법재판관 국회 선출안을 처리한 상황에서는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반발한 더불어민주당은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이 현실로 다가오자 행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열어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단 한 분도 안 계셨다”며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하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날 마은혁·정계선·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자 세 명의 국회 선출안을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하고 한 권한대행에게 즉시 임명할 것을 요구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만약 불가피하게 이런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먼저 이뤄지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 헌정사에서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관례”라고 설명했다.
담화 직후 민주당은 “권한대행이 아니라 내란대행임을 인정한 담화였다”며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날 본회의에 보고된 탄핵안은 27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의결 정속수를 ‘재적 인원 과반(151명) 찬성’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같은 ‘재적 의원 3분의 2(200명) 찬성’이라는 입장이다.
우원식·권영세·이재명 거론하며 "정치인들의 리더십 보여달라"
그는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을 행사하기에 앞서 여야가 합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시간을 들여 사법적 판단을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을 때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권한대행은 우원식 국회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이름을 거론한 뒤 “여야 정치인들이 반드시 그런 리더십을 보여주실 것이고 또 보여줘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사법부가 “권한대행의 대법원장 추천 몫 재판관 임명은 헌법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힌 점을 들어 한 권한대행이 책임을 회피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합의가 필요하다’는 논리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을 국회가 선출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지극히 당연한 절차이고 여야가 이미 합의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27일 한 권한대행 탄핵안이 가결되면 여야 갈등은 격화할 전망이다. 여야는 벌써부터 권한대행의 탄핵 의결 정족수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이에 관한 권한쟁의심판 등 법적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작지 않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계엄 이후에도 당장 금융·외환시장에 큰 영향이 없었던 것은 경제팀이 빠르게 움직인 영향이 컸다”며 “경제를 담당하는 부총리가 외교·국방까지 맡게 되면 경제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당장 다음주 발표를 앞둔 2025년도 경제정책 방향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정책과 시장 관리에 주력해야 할 기재부가 국정 전반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은 부총재를 지낸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국내 기업과 가계도 혼란스럽겠지만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가 동요하고 있다”고 했다.
양길성/강경민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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