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이날 러시아24TV와의 인터뷰에서 “실험적인 체제의 일환으로 비트코인을 무역 대금 결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비트코인 거래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거래는 내년에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지난 7월 무역 결제에서 암호화폐 사용을 시범적으로 합법화했다. 서방의 금융제재를 우회하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돼 달러 거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갈등이 격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중국 러시아 등 브릭스(BRICS) 국가를 향해 “(암호화폐 등으로) 달러에서 벗어나려 하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러는 자산 인정·채굴 면세 법제화…中은 디지털 화폐 상용화 나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했다. 러시아는 해외 무역의 절대량을 차지하는 달러 결제가 원천 차단되며 해외 무역에서 중국 위안화로 결제하거나 밀수출하는 방법으로 버텨왔다.
러시아는 지난 8월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소득에 최고 15% 개인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신 암호화폐 채굴에 대한 부가가치세는 면제하는 게 핵심이다. 이는 미국이 달러를 정치적 의도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암호화폐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달 5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VTB 투자 포럼에서 “비트코인을 누가 금지할 수 있느냐”며 “누구도 금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발 더 나아가 러시아 정부는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 준비금에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암호화폐 전문 매체 크립토포테이토에 따르면 안톤 트카체프 러시아 하원의원은 최근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에게 “전통적 통화 준비금과 같은 방식으로 러시아의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 조성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해달라”는 내용의 제안서를 보냈다. 해당 제안서에는 최근 가격이 급등한 비트코인이 전략 준비금의 주요 수익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트카체프 의원이 속한 ‘새로운 사람들’은 러시아의 관제 야당으로 꼽힌다.
CBDC는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중국과도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장점이 있다. 일찌감치 CBDC 시스템 상용화에 나선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차세대 기축통화로 삼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미국은 브릭스가 연합해 CBDC 등으로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브릭스 국가는 새로운 통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100% 관세를 부과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비트코인 무역 거래가 활성화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달리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다른 브릭스 회원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활발히 달러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무역 거래에 활용하기 쉽지 않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 달러의 국제적 사용이 줄어들면서 비트코인 거래 등 탈달러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스티븐 블리츠 TS롬바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달러 힘을 약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한경제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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