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다사다난했던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저물어가면서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2025년 을사년(乙巳年) 재테크 전망을 점치기 바쁩니다. 내수 부진 속 맞닥뜨린 탄핵 정국, 고환율 등 악재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 불확실성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시점입니다. 한경닷컴은 다양한 업종의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 전문가에게 새해 투자전략을 물었습니다.
“내년 이맘때쯤 국내 조선사 주가는 분명히 지금보다는 한 단계 높아져 있을 겁니다.”
오기종 트로이투자일임 대표(사진)는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주 전망에 대해 “최소 3년 동안은 이익이 늘어나는 게 거의 정해져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트로이투자일임은 2017년 9월 금융위원회에 투자일임업 등록을 한 뒤 현재까지 누적 수익률 약 92%를 거둬 ‘투자 족집게’라는 별명을 얻었다.
트로이투자일임은 올해 5~6월께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주를 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올해부터 고객 계좌에 조선주를 담기 시작한 이유는 실적 개선이다. 오 대표는 “올해 들어 대형 조선사들의 분기별 실적이 대부분 흑자 기조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HD현대그룹의 조선사들을 모아 놓은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작년 4분기를 마지막으로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화그룹으로의 편입 과정에서 진통을 겪은 한화오션은 올해 2분기에 9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올해 연간으로는 흑자가 확실시된다.
흑자 기조가 자리잡은 배경은 높은 가격으로 수주한 선박 건조 프로젝트들의 실적 반영이라고 오 대표는 설명했다. 현재 실적에 반영되고 있는 선박 건조 프로젝트들은 2022년 전후로 수주한 것들이다. 2022년은 팬데믹 이후 선박 발주 호황이 시작된 지 1년여가 지난 시점이다. 그전까지 조선사들은 2020년의 수주 가뭄으로 부족해진 수주잔고를 채우느라 저가 수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일감을 채운 2022년부터는 제값으로 수주했다.
2022년에 수주한 프로젝트들이 이제야 조선사 실적에 반영되는 이유는 설계 기간 동안은 매출을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사들은 선박 건조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최장 2년간의 설계과정을 거치고 야드에서 작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매출은 인식한다.
선박 발주 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가 집계하는 신조선가지수는 지난 20일 189.10포인트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2008년 9월의 191.6포인트)에 근접한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의 수조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한국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해도 2028년에나 인도받을 수 있다. 2027년치까지 일감이 꽉 찼다는 말이다. 일감을 채우는 동안 선가가 상승했고 우리 조선사들은 수익성이 높은 프로젝트만 선별적으로 수주했다. 오 대표가 향후 3년 동안 조선사들의 이익이 증가하는 게 “정해진 미래”라고 말한 이유다.
이미 조선주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은 상당수 알 법한 논리다. 올해 들어선 이후 HD현대중공업 주가가 2배 이상으로 올라 계속해서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배경이다. 이에 조선주를 새롭게 매수하기는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트로이투자일임에서 리서치를 담당하고 있는 김휘수 대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상승 여력이 남았다”고 답했다.
과거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조선사의 기업가치를 평가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기업가치 평가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김 대리는 강조했다. 그는 “올해까지 국내 주식시장을 주도한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방위산업 등 수출 업종들은 대부분 이익이 늘어났고,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돋보인다”며 “이 업종들의 기업가치는 미래 이익에 대한 기대로 형성되는데, 이익이 계속 늘어나는 구간에서는 과거의 밸류에이션 고점을 계속 돌파해왔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으로 조선주를 팔아야 할 시점은 이익 전망이 꺾일 때라고 오 대표는 지목했다. 이를 판단할 지표는 기본적으로 컨센서스다. 이익 컨센서스가 하향되는 종목은 당장 매도를 고려하라고 오 대표는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이 추정치를 꺾기 전에도 이익이 줄어들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 우선 한화오션을 제외한 대형 조선사들은 월별 수주 실적을 공시하거나 홈페이지에 게재한다. 여기서 수주잔고가 꺾이면 이상징후로 받아들이라고 오 대표는 설명했다. 수주잔고는 건조한 선박이 인도된 것 이상의 수주가 들어오지 않을 때도 줄어들지만, 기존의 선박 건조 계약이 취소됐을 때도 줄어들 수 있다.
지난달 조선주 주가를 밀어 올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수혜 기대감에 대해 트로이투자일임은 절반 정도 동의하고 있다.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은 주식시장과 방향성을 같이 한다. 다만 내용이 다르다. 트럼프 당선인의 언급으로 부상한 군용 선박 유지·보수(MRO) 비즈니스가 단기간 안에 실적에 반영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보다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비롯한 상선 수주 모멘텀을 기대한다. 실제 지난 19일 미국 하원에서는 10년 안에 미국 선적 상선을 250척으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일명 미국선박법)’이 발의됐다.
장민국 트로이투자일임 리서치팀 대리는 “7개 LNG 수출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은 전 세계에서 LNG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라며 “이에 더해 현재 5개가 추가로 지어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가 18개 LNG 수출 터미널 개발 프로젝트의 승인을 보류한 상태인데,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하자마자 보류된 프로젝트들을 승인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LNG 수출 확대 계획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됐다. 과거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공급을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오르면서 미국산 LNG로의 에너지 공급선 대체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사용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천연가스 수출 확대에 속도가 붙어 이를 실어나를 LNG운반선 수요가 늘어난다고 장 대리는 설명했다.
미국에 이어 인도도 한국 조선업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최근 알 락슈마난 인도 항만해운수로부 차관보, 인도 최대 국영 조선사인 코친조선소의 마두 나이르 최고경영자(CEO), 인도 최대 국영 선사인 인도해운공사(SCI)의 비네시 쿠마르 티아기 CEO) 등 ‘인도 조선업 대표단’이 국내 조선소들을 방문해 자국 해운·조선업 육성 방안을 모색했다.
이에 대해 오 대표는 "미국과 인도 모두 자국의 상선단을 가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물동량이 줄어들면 선박 발주 시장도 시들해지는 기존 조선업황 사이클이 달라진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수익성을 따지는 기업과 달리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국가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상선 발주시장 진입은 기존 선사들의 선박 발주를 자극할 가능성도 오 대표는 제기했다. 그는 "한국 조선업계의 연간 선박 인도량은 200척 수준으로 미국과 인도가 대규모 선박을 발주하면 지금도 3년이 넘어가는 건조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며 "불안해진 선사들이 투기성 선박 발주에 나설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중장기적으로는 MRO 비즈니스 확대에 따른 실적 증가도 기대된다. 오 대표는 “미국 해군 함정 MRO 시장의 규모는 약 20조원”이라며 “한국의 상위 조선사 5개의 연간 매출 합산치가 50조원가량인데, 20조원 규모의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고 보면 결코 작지 않다”고 말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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